하루를 다시 쓰기로 했다
만지작거리던 어제를 벽장 속에 눕히고,
식은 커피가 포개놓은 손가락의 주름을 세며
마음 깊은 데까지 묵은 향기를 덜어냈다
밤과 지우개가 은밀히 나눈 협상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어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기억이 지워지지 않아도
다시 쓸 수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밤이 물러서며 내어준 하늘,
어둠의 인내가 빚어낸 새벽,
달이 살며시 밀어 넣은 바람이
심장을 다시 켜는 시간
그 모든 작은 움직임들이
나를 부드럽게 끌어당겨
하루라는 흰 종이 앞에 앉힌다
아침은
기회의 이름을 가진 자만이 아니라,
넘어진 이에게도 허락된다는 사실을
오늘은 믿어보기로 한다
창가에 기대 있는 몇 줄기 햇살이
잊었던 노래의 첫 음을 흘려줄 때
다 지우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덧쓰고 고치고,
때로는 흐릿하게 남겨두어도
하루는 다시 피어날 수 있다는 걸
기억은 버림의 대상이 아니라
조화로운 배경이 되어
새 문장을 써 내려갈 수 있다는 걸
이제는 매일의 문턱에 선다
텅 빈 백지가 아니라,
살아낸 시간을 품은 서랍처럼
조금은 낡았지만 온기 있는 날로
나는 오늘,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하루를 다시 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