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마음

by 소향

봄을 맞는 농부의 손엔
겨울이 남기고 간 틈새마다
터진 슬픔이 말없이 피어 있다

비닐하우스의 숨결이
따스하게 부풀어 오를 때면
검붉은 손등 위로
물을 구하는 마음이 분주해지고
겨울의 질투가 끊어놓은 관 속
양수기의 속살은 조용히
붉은 피처럼 드러난다

쇳소리로 내지르는 용기의 몸짓에도
힘 빠진 물줄기 하나
비쩍 마른 바닥에 숨을 놓으면
가난보다 더 허전한 주머니가
바람에 혼잣말을 흘린다

생명을 버리지 못하는 이에게
생존은 종교가 되고
그 믿음 하나로
긴 호흡을 꿰매듯
터진 관의 상처를 붙여본다

‘수술이 잘 되었다’는 말이
가볍게 떠다니는 사이
쇳결 따라 또 하나의 틈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그 방울은 웃는 듯 울며
농부의 인내를 시험한다

목 타는 이랑 위에
첫 비가 흩뿌려지는 저녁이면
“이만하면 됐다”는 한마디 안에
하늘과 땅, 인간과 계절이
잠시 손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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