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통의 문자가 도착했다.
두 글자였다.
“부고”
그 짧은 문장 하나에, 숨이 멎는 듯한 침묵이 찾아왔다. 기계음은 무심했지만, 그 알림 속에는 삶 하나가 완전히 꺼졌다는 사실이 담겨 있었다.
'부고'
너무 짧아서 더 슬픈 말이다. 그 안엔 이름과 나이, 사망일자와 빈소 위치처럼, 몇 줄로 요약된 한 사람의 존재가 무심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어제까지 누군가의 하루였던 삶이, 받을 수 없는 주소로 바뀌어 세상에 남겨졌다.
사람들은 부고는 절차이고 공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게 부고는 삶이 남긴 마지막 편지다. 살아 있는 동안 나누지 못한 말들, 미처 꺼내지 못한 진심, 끝내하지 못한 고백들이 그 안에 모두 압축되어 있다.
부고는 죽은 자의 소식이 아니라, 산 자에게 남겨진 말 없는 마지막 문장이다.
나는 한동안 휴대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만 봤다. 부고를 읽는다는 건 단지 누군가의 죽음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 그 사람의 존재를 지우고 살아가야 함을 통보받는 일이다. 더는 그 이름으로 전화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예고, 한 번도 미뤄본 적 없는 이별의 최종 통지서, 삶이 끝났다는 사실보다, 그 사람이 남긴 빈자리가 내 삶을 어떻게 잠식할지 모른다는 불안이다.
부고는 단순한 알림이 아니라 존재가 사라진 자리를 보여주는 지도일지도 모르겠다.
그 지도를 따라 빈소에 도착하면, 우리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꽃을 올린다. 향은 피워지고, 슬픔은 침묵 속에서 번진다.
그날 나는, 그 사람의 마지막 표정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 봤다.
어느 바람이 차가워지던 초가을 오후,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내뱉은 말이 있다.
“사람은 결국, 자기만의 날씨를 가지고 떠나는 것 같아.”
나는 그 말을 흘려들었지만, 지금 그 문장이 가슴속에 오래 머물고 있다.
그 사람의 날씨는 지금 어디쯤일까. 서늘했을까, 따뜻했을까. 나는 그 질문 하나를 반복하며, 그가 떠난 뒤의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살아가며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끝내야 할 인연들을 미뤄두고, '나중에'라는 말로 안부를 유예한다. 하지만 죽음은 아무것도 미루지 않는다. 그래서 부고는 시간이 닫힌 자리에서 도착한 한 장의 마지막 안부다.
더는 말할 수 없는 사람이, 더는 손 내밀 수 없는 세계에서 보내온 가장 조용한 인사인 것이다.
우리는 자주 이별을 이야기하지만, 진짜 이별은 말이 없다. 다짐도, 고백도, 약속도 없다. 그래서 부고는 더 아프다. 죽음은 눈앞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지 않는다. 그것은 예고 없이 삶을 끊고, 흔적만 남긴다.
그리고 살아 있는 우리는, 남겨진 그 흔적을 만지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누구에게나 마지막이 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그 마지막을 알지 못한 채, 인정하기를 거부한 채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부고가 도착할 때마다 깨닫는다. 살아 있음이 얼마나 순간적인지, 지금 나누는 이 말 한마디가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삶은 그렇게 짧고, 부고는 그렇게 확실하다.
말의 끝이 닿는 지점에서, 우리는 비로소 사람을 되돌아본다.
나는 요즘, 자주 생각한다.
“내 부고는 어떤 문장으로 도착할까.”
단지 몇 줄의 정보가 아니라, 내 삶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한 문장이 있을까.
그 문장은 누군가의 마음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까.
누군가 나의 부고를 받고, 잠시라도 나를 기억해 준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내 입을 통과해야 하는 단어들을 좀 더 조심스럽게 골라본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볼 때, 말보다 따뜻한 눈빛을 먼저 건네본다.
삶은 종종 너무 빠르게 흘러간다.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소중한 사람들을 뒤로 미룬다. 사랑은 표현하지 못한 채 잠들고, 용서는 타이밍을 놓쳐 허공을 맴돈다.
그러다 어느 날, 진동음 하나가 삶을 갈라놓기도 한다.
삶이 남긴 마지막 편지, 부고가 도착했다.
그 문장은 한 사람의 끝에서 왔지만, 남은 사람들에게는 시작이다.
다시 사랑해야 할 시간, 다시 고마워해야 할 이름, 다시 살펴야 할 얼굴들.
이 글을 쓰며 이제야 깨닫는다. 부고는 죽은 자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자에게만 도착하는 마지막 편지다.
“오늘을 다정하게 살아달라”는, “사랑을 미루지 말라”는, “슬픔도, 삶도, 결국 당신의 몫으로 남을 것”이라는
삶의 마지막 메시지다.
나는 그 메시지를 잊지 않기로 한다.
그러니 오늘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따뜻한 말을 건네주기를.
그 말 한마디가, 당신이 남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부고가 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