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생각
살다 보면, 스치듯 지나간 누군가가 뜻밖의 문장처럼 가슴에 오래 남는다. 이름도, 정확한 얼굴도 떠오르지 않지만, 그 사람을 떠올릴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진다. 어떤 만남은 그렇다. 설명되지도, 되풀이되지도 않지만, 분명히 내 삶을 바꿔놓는다.
나는 그런 만남을 시라고 부르고 싶다. 말보다 여운이 오래 남고, 기억보다 감정이 먼저 반응하는, 그러한 만남은 인생이 우리에게 건네는 조용한 문장이다.
그리고 어느 날, 불쑥 그 문장이 내 안에서 울린다.
"그 사람을 만난 순간, 나는 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
나는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매일이 반복되고, 얼굴을 마주치는 사람들조차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본 풍경처럼 흘러갔다. 깊이 나눌 말도 없고, 기대할 감정도 없이 무미건조한 하루하루를 버렸다. 그런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된 누군가가 내 일상에 들어왔다. 별다른 사건도 없이, 그저 커피 한 잔 사이에 몇 번의 대화가 오갔고, 그 안에서 나는 이상하게 편안함을 느꼈다.
그 사람은 내 이야기를 자주 묻지 않았다. 대신,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질문을 건넸다. “요즘 자주 웃나요?”
나는 웃지 못하고 있는 나를 그제야 깨달았다.
그때 처음으로, 누군가와의 만남이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존재를 인정받는 일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종종 거창한 인연을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 경험은 그 반대다. 삶의 방향을 바꾸는 만남은 오히려 조용히 다가온다. 특별한 사건이 없고, 극적인 장면도 없다.
하지만 그 사람과 스쳐간 어느 장면이 내 안에 각인된다.
버스에서 말없이 나란히 앉아 있던 시간, 횡단보도 앞에서 각자의 방향으로 걸어갔던 뒷모습, 혹은 헤어지며 “조심히 가세요”라는 짧은 말.
그 모든 사소한 순간들이 어느새 한 편의 시가 되어 마음속에 박재가 된다.
이름 대신 온기로 남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내게는 몇 있었다.
그 만남은 시간을 지나도 명언집의 한 문장처럼 선명하다.
단 한 줄이면 충분하다. “그때, 나는 외롭지 않았다.”
살면서 우리는 무수한 관계의 매듭을 맺고 풀어낸다. 어떤 인연은 사랑이었고, 어떤 인연은 상처였으며, 또 어떤 인연은 아무 말 없이 스쳐간 인사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나서도 잊히지 않는 사람은 따로 있다. 그 사람은 내 삶에 시처럼 존재하며, 정제된 언어가 아니라, 순수한 울림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과 함께 보낸 하루는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한 연이 바뀐 순간이다.
우리는 서로의 서사 속에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어떤 만남은 첫 장도, 마지막 장도 없이 삶의 문장 중간에 갑자기 삽입되는 시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가, 누군가의 삶을 다르게 읽히게 만든다.
어느 날,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얼굴에서 지난 인연의 흔적을 떠올릴 때가 있다. 나는 문득 멈춰 서게 된다. 아마 그 사람은 이미 나를 기억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을 잊지 못한다.
잊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내 안에 이미 하나의 문장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문장은 내 삶을 조용히 아주 선한 영향력으로 이끌어 왔다.
넘어질 때 다시 떠오르고, 기댈 곳이 없을 때 스스로를 일으켜 세웠던, 누군가의 말 한마디, 미소 하나, 침묵의 결이 그렇게 내 삶을 시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누군가를 만나는 순간을 가볍게 여기고 싶지 않다.
우연을 가장한 운명이 있을 수 있고, 짧은 인사가 인생의 고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만남, 오직 한 번의 마주침으로도 사람을 바꾸고, 삶의 결을 다르게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은, 반드시 언젠가 마음속에서 다시 떠오른다.
마치 인생이 아주 조용히 내게 건네는 한 줄의 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