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생각 -클로버
카페를 찾던 비 내리던 날 어느 아침, 차에서 내리다 문득 바라본 클로버 무리에서 그 아이를 발견했다. 세 잎 사이로 조심스럽게 고개를 든 네 번째 잎. 누구도 손대지 않은 채, 작고 여린 몸으로 제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가 빛처럼 환한 웃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운명처럼
사람들은 네 잎의 클로버를 행운이라 부른다. 일반적인 세 잎에서 하나가 더 자라나야지만 완성된다. 찾기 어렵기에 더 간절해지는 것. 누군가에겐 그냥 풀이지만, 누군가에겐 오래도록 기다려온 응답이다. 단 한 잎 차이로 삶은 기적으로 변모하고, 사람은 그것을 ‘희망’이라 착각하며 붙든다. 마치 그 한 잎이면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처럼.
그러나 너의 곁에서 또 다른 너를 만났다. 다섯 잎을 가진 클로버. 네 잎조차 귀하다는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가진 너는 낯설지만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다섯 잎을 사랑이라 말한다. 나는 한동안 그 말을 곱씹었다. 잎 하나 더 자란 형상이 왜 사랑이라 불렸을까.
행운은 어쩌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일지 모른다. 뜻밖의 선물처럼,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주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뿌리내리고 자라는 것이다. 땅속에서부터 고통을 지나 자라나고, 상처로부터 스스로를 껴안으며 잎을 더해가는 것이다. 그러니 다섯 번째 잎은 우연이 아니라, 인내의 결정체다. 기도 끝에 맺힌 간절한 마음의 잎사귀다.
행운은 반짝이지만, 사랑은 견디며 빛난다. 행운은 나를 향하지만, 사랑은 너를 향한다. 그래서 사랑은 언젠가 내가 감당해야 할 형체 없는 무게로 다가온다. 기다림과 아픔, 배려와 포기. 그 모든 것의 형태가 다섯 번째 잎에 담겨 있다. 누구나 바라지만, 아무나 피워낼 수 없는 잎 인 이유다.
나는 두 클로버를 책갈피처럼 펼쳐 말린다. 하나는 기적의 모양으로, 하나는 고백의 모양으로. 눈으로는 그 다름이 크지 않지만, 마음으로는 거리를 넘어선 간극이 있다. 네 잎은 바라던 것을 만나는 순간이지만, 다섯 잎은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순간이다. 더 많이 가진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나누는 마음이다.
사람들은 종종 네 번째 잎을 찾아 평생을 헤맨다. 그러나 정작 다섯 번째 잎은 두려워한다. 사랑은 예측할 수 없고, 상처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제 나는 잎 하나가 더 자라기까지, 얼마나 많은 계절을 견뎌야 하는지를. 얼마나 조용히, 얼마나 묵묵히 한 존재가 성장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본다.
그 잎을 기적이라 부르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어떤 기적보다 오래된 사랑의 증거다. 손끝에 닿았을 때보다, 그 존재를 바라보는 마음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너를 꺾고 난 후에야 배운다.
이제 나는 삶의 부족이 찾아올 때면, 그 잎들을 꺼내어 바라볼 것이다. 하나는 나를 위로하고, 다른 하나는 나에게 용기를 줄 것이다. 행운은 잠시지만, 사랑은 나를 바꿀 것이다. 그 잎을 마주하는 마음으로 누군가의 잎이 되고 싶어진다. 누군가에게 네 번째 잎이 아니라, 다섯 번째 잎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