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생각
헤어짐은 대개 조용히 찾아온다. 울음도, 고백도 없이 어느 날 문득, 더 이상 서로의 시간을 나누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말없이 멀어진다. 작별은 꼭 이별이라는 단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다 말했음을 감각적으로 안다. 그게 진짜 헤어짐이다.
나는 한동안 이별을 ‘완전히 사라진다’고 믿었다. 감정이 식고, 관계가 끝나며, 존재가 지워지는 것이라고. 그러나 살아보니 그렇지 않았다. 진짜 헤어짐은 사라짐이 아니라, 모양을 바꾸는 일이다.
사람은 떠났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문다. 손은 놓았지만, 기억은 놓지 못한다. 우리는 그렇게 계속해서 존재한다. 떨어진 자리에서, 각자가 다른 방식으로.
오래전, 함께 길을 걷던 이가 있었다. 함께 걷는다는 건 같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뜻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조용히 멈춰 섰다. 인사도 없이 반대 방향으로 걸어 나왔다. 싸우지 않았고, 붙잡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것은 분명한 이별이었다. 가슴에 남은 정적은, 오히려 말보다 더 깊었다.
헤어지고 나면 모든 게 끝날 것 같지만, 실은 그때부터 비로소 시작된다. 마음은 낡은 풍경을 다시 붙들고, 사라진 목소리를 되새기며, 오래된 시간을 거꾸로 살아간다.
그리움은 방향을 잃은 감정이고, 사랑은 기억 속에서 다른 색으로 계속 피어난다. 이별은 감정의 종결이 아니다. 감정이 이동하는 방식이다.
나는 그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헤어짐은 사람에게만 일어나지 않는다. 시절과도, 마음과도, 나 자신과도 이별하게 된다. 오래 사용하던 문장 하나를 버리는 일, 더 이상 설레지 않는 노래를 넘기는 일, 혹은 스스로 품던 신념을 조용히 놓는 일.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던 김광석의 노래 가사처럼, 그렇게 우리는 매일 무언가와 작별하며 살아간다.
그 작별은 상실이 아니라 성장이다. 한 시절을 제대로 살았기에 떠날 수 있는 것. 그 삶의 증거로 우리는 이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지는 것이다.
한때 믿었던 말들을 버려야 했고,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관계를 스스로 놓아야 했던 적도 있다. 그때는 실패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안다. 놓아야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남은 자리는 빈자리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자리다. 그 빈틈에 빛이 들었고, 고요가 깃들었고, 결국 나 자신이 들어서는 것이다.
헤어짐은 그 자체로 완전한 사건이다. 잊는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기억한다고 해서 그대로 머물지도 않는다. 사람은 언젠가 잊혀지지만, 그 사람이 남긴 흔적은 내 속에 남는다. 내 말투 안에, 습관 속에, 다른 누군가를 대하는 태도 속에.
그는 떠났지만, 그 사람이 나에게 준 감정은 지금도 나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모두 어딘가에서 왔고, 또 어디론가 가는 존재다. 끝없이 만나고 끝없이 헤어지는 여정 속에서, 진짜 남는 것은 ‘함께 했던 시간’뿐이다.
그 시간을 품은 사람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그와 함께했던 모든 순간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으므로.
언젠가 소중했던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건넨 적이 있다.
“네가 어디에 있든, 널 응원할게.”
그 말은 곧, 서로를 완전히 놓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시간이 지나고 마음이 멀어져도, 그 사람이 내 안에 있었고, 그 이유로 잊지 않고 계속 잘 되기를 바라겠다는 다짐이었다.
이별을 통해 그렇게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사람을 떠올린다. 그의 웃음, 그 눈빛, 그 이름. 그 모든 것들이 나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니 이별은 끝이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방식으로 계속되는 사랑이며, 우리가 서로를 잃지 않기 위해 택한 가장 조용한 방법이다.
가장 깊은 이별은, 말없이 이어진다.
그 조용한 지속이야말로, 사랑이 완성되는 마지막 형태는 아닐까.
♤. 사진설명: 아침, 네 잎 클로버를 찾다가 다섯 잎과 네 잎이 한 곳에 있음을 보았다. 다르지만 공존이다.
행운을 기대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