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은 방향이다 - II
한때, 나는 모든 기억의 대부분이 상처라고 생각했다.
불현듯 떠오르는 장면 하나에도 가슴이 저릿했고, 익숙한 골목을 지나다 만나는 낡은 간판 하나에도
마음이 주저앉을 만큼.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약하고, 기억은 참 무심하게 날카롭다는 생각을 했다.
잊었다고 생각한 순간, 그것은 더 깊이 되살아났으니.
'기억은 치유되는가'라는 질문을 해 본다.
치유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덜 아픈 상태로 버티는 일인가.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더는 아파하지 않았고, 더는 피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게 잊은 건 아니라는 걸, 나는 스스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말 그대로, 기억은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흉터 같았다.
살 속에 완전히 녹아든 상처, 이제는 손끝으로 더듬어야만 느껴지는 그 자국.
다만 이상하게도,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꽃을 놓곤 했다.
그 자리는 내 안의 어딘가, 지나온 시간이 머물러 있는 곳이다.
그 안에는 흩어진 사랑도, 끝내 전하지 못한 말도, 내가 너무 어린 마음으로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얼굴도
고요하게 앉아 있다.
나는 그 앞에서 가끔은 서성거리고 있다
그리고 말없이 작은 꽃 한 송이를 놓는다.
슬픔이 아니라, 그 시간을 함께 지나와 준 모든 것들에 대한 감사와 이해로.
꽃을 놓는다는 건, 기억을 끌어안는 일이다.
도망치지 않고 마주하는 것.
그날의 나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 시절의 나에게 괜찮다고, 수고했다고 토닥여 주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자리가 있다.
멀리 돌아가야만 도달할 수 있는 내면의 풍경.
그곳은 아픈 만큼 따뜻하고, 지나온 만큼 단단하다.
살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때의 그 상처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양이었을까.
더 단단했을까, 더 무르익지 못했을까.
인생은 이해보다 수용이 먼저 오는 것 같다.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어도, 그 자리에 조용히 머물러 주는 일.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씩 치유가 된다.
꽃은 매번 다르다.
어떤 날은 마당에서 꺾은 장미 한 송이, 어떤 날은 말라버린 수국 한 가지, 어떤 날은 그저 손끝에 매달린 상상의 꽃.
그러나 중요한 건 꽃이 아니라 ‘놓는 마음’이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흘러가도 기억의 자리는 느리게, 그리고 조용히 존재한다.
그 자리에 꽃을 놓는다는 건 내가 그 시간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이해하고 품고 있다는 증거다.
이제 나는 안다.
기억은 더 이상 아프지 않아도, 그 자리는 여전히 내 삶의 일부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종종 그곳에 들러 꽃을 놓을 것이다.
다정한 이별처럼, 늦은 고백처럼, 혹은 잊지 않겠다는 조용한 다짐처럼.
나는 아픔을 통해 내 삶의 방향을 완성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아픔은 아물며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꽃을 심으며 내 삶의 방향을 완성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