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생각
하루는 매일같이 반복되지만, 결코 같은 날은 아니다.
같은 시간에 눈을 떠도 다른 빛이 들어오고, 같은 거리로 출근해도 사람들의 얼굴은 매번 다르다.
그 수많은 변화 속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
누군가의 오늘이, 누군가에게는 삶 전체를 뒤흔드는 하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 마음 앞에 서면 조심스러워진다. 그리고 문득, 작고 다정한 문장이 되어 누군가의 하루에 조용히 스며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나는 글을 쓴다. 문장을 만든다.
하지만 그것이 문학이기 이전에 사람이기를 가만히 기도해 본다.
무언가를 가르치기 위한 문장이 아니라, 곁을 내어주는 말이기를 말이다.
아무리 화려한 글도 사람의 마음에 닿지 않는다면 공허한 울림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난날들을 통해 기억하고 있다.
누군가를 떠올려 본다.
사무실에 앉아 있지만 창밖만 바라보는 사람.
길 위에 멈춰 선 채, 전화기 너머의 대답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
혼자 밥을 먹다 말없이 눈을 감는 사람.
그 사람들에게 건넬 수 있는 것이 오직 한 줄의 말뿐이라면, 그 문장을 정직하고 단정하게 다듬어야 한다.
말이 사람을 해치지 않도록, 다친 마음을 두 번 울리지 않도록 말이다.
어릴 적,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랫말 한 줄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문장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가사였다.
하지만 그때의 내 마음엔 딱 맞는 자리가 있었고, 그 말은 아무도 몰래 그곳에 들어와 감정을 토닥였다.
문장이 사람을 안을 수도 있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누군가를 떠올리며 글을 쓴다.
내가 전부를 알 수 없는 사람, 목소리도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 하지만 마음이 기울어진 그런 날, 그 순간에 나의 말이 작은 기댐이 되어줄 수 있다면.
내가 쓴 한 줄이 누군가의 긴 밤을 통과하게 해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하나의 문장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사는 일이란, 결국 마음의 무게를 어떻게 견디느냐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말로 쉽게 설명되지 않는 감정, 눈빛으로도 다 전해지지 않는 마음.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이 문장이고, 말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의 말들이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는 요즘, 그저 따뜻하다는 이유만으로도 소중한 문장이 있다.
침묵에 등을 기대는 말, 울음을 허락하는 말, 아무 대답이 없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말들이 그럴 것이다.
나는 시를 쓰기는 하지만 아직 시인은 아니다. 그러나 삶을 시처럼 대하고 싶다.
밥을 지을 때 나는 뜨거운 김 속에서 엄마의 손을 기억한다.
창밖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아직도 내 안에 머물고 있는 이별을 떠올린다.
무심히 스치는 일상에서 고요히 피어나는 장면들, 그 안에는 그 순간에 머물던 사람이 있다.
나는 그 장면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 마음을, 말로 꺼내고 싶다.
글을 쓰는 시간이란, 마음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이다.
세상에서 조금 떨어져 나와 숨을 고르는 시간, 거기서 길어 올린 말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단순하고, 조용하다.
그 조용함이 누군가에게 귀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그 믿음 하나로 나는 다시 책상을 마주하고, 한 글자씩 문장을 고민해 간다.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문장이 아니라, 잠깐이라도 마음에 머무는 문장이고 싶다.
기억 속에 남지 않더라도, 살아가는 길목에서 슬며시 등을 밀어주는 문장.
울지 못한 사람의 눈시울을 적셔주고, 차마 말하지 못한 사람의 손을 가만히 잡아주는 문장.
삶의 가장 고요한 자리에 가 닿을 수 있는 말들이고 싶다.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누구를 향한 지도 알 수 없는 말들을, 누군가가 흘려보낼지도 모를 문장을 어루만져 숨을 불어넣는다.
누군가의 마음에 그것이 조용한 위로가 되기를, 힘이 되기를, 기억에 오래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세상에 한 사람이라도, 나의 말에 위로받는다면 그 말은 이미 그 사람의 시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