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이야기
호수, 바람 한 점 없는 날 세상을 담은 고요한 거울을 보았습니다. 하늘에 있어야 할 구름이 그곳에 있었고, 나무가 조용히 호수를 움켜쥘 때 산이 거울로 들어와 편안히 누워 쉬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창백하리만치 맑은 거울은 온통 세상을 다 품고 가만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지나던 빨간 고추잠자리만 투명한 거울이 신기 한 듯 꼬리로 노크를 하는 모양입니다.
노을이 물드는 시간, 호수는 또 무엇이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게 물들었습니다. 조용히 누워 쉬던 산은 타는 불을 끄기 위해 호수로 걸어 들어옵니다. 길게 꼬리 늘이며 저물어가는 해를 못내 아쉬워하듯 철새가 울며 날아오르고, 곧 날은 저물어 별들이 호수로 떨어집니다. 무수히 많은 별들이 떨어지는 시간, 어느 것이 호수이고 어느 것이 하늘인지 구분이 안됩니다. 세상이 온통 검은 밤이었습니다. 별들이 머무는 자리는 이제 하늘이 아닌 호수가 되었습니다. 저녁이 되면서 산들바람이 불어와 호수 위를 살며시 걸어 봅니다. 바람의 발자국 따라 물결이 춤을 추니 별들도 따라 춤을 춥니다. 그렇게 밤이 깊어 가도록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나는 호수를 찬찬히 바라봅니다. 호수를 통해 하늘을 봅니다. 고개 들어 하늘을 보지 않더라도 바닥을 보면서 하늘을 볼 수 있는 공간 그곳이 바로 호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래전 친구와 낚시를 간 적이 있습니다. 채비를 펼쳐놓은 호수에서 낚시에는 관심 없고 호수만 관찰하다 온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인즉 고기를 한 마리도 낚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강태공이 세월을 낚는다는 말을 경험하고 온 날 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가 버렸습니다.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는데 어떻게 지루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연과 더불어 사색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연을 돌아보고, 나를 돌아보고, 지금의 나를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평소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늘 한 번 제대로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바쁜 세상살이에 분주한 발걸음이 하늘 볼 시간을 허락하지 않음을 인식도 못하고 살아가는 듯합니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설사 시간이 여유 있다 해도 우리는 밖으로 나와 하늘 한 번 볼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컴퓨터 게임, 영화, SNS 등등 무수히 많은 하고 싶은 일들이 있기 때문 입니다. 그렇기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은 점차 메말라 가고 있는 듯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볼 여유를 만들지 않고 현실과 가상현실을 넘나들며 쾌락을 좇는 모습은 불나방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간혹 과몰입한 불나방이 잔혹한 현실을 만들기도 하는 이유는 바로 정서적인 메마름과 쾌락을 좇다 보니 현실과 가상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게 하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호수가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의 마음에 거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치고 힘들 때 컴퓨터를 통한 가상현실을 넘나들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한 번 비춰보고 다독여주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자기 스스로가 위로하지 못하는 마음을 누가 위로해 줄 수 있을까요? 본인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그 사람을 사랑해 줄 수 있을 까요? 자신도 사랑해 주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은 아닐까요?
오늘, 호수에 자신의 마음을 한 번 비춰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