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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향 Sep 08. 2020

고독을 잃어버리다

시를 말하다

세상에 무수한 말들이 있고 그중에 '고독'이라는 말이 있다. 고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스스로 만들어 즐기는 고독과 어쩔 수 없이 맞이하게 되는 고독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스스로 만드는 고독을 우리는 사색이나 사유라는 이름을 붙인다. 시간과 공간을 할애 해 언제든 시작하고, 언제든지 마무리할 수 있다. 사색이나 사유는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하나의 과정이 된다. 사색이나 사유가 어떻게 성장을 시킬까? 바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통해 스스로를 판단하고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정진해 나가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사색과 사유가 없다면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떻게 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렇기에 스스로 만드는 고독의 시간과 공간은 자신을 가르치는 스승이 되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자신을 가르치는 스승이 된다는 말은 배철현 작가의 '심연'에서 언급된다. 작가는 이 책에서 자기 성찰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자기 성찰을 위해서는 심연에 도달해야 한다고 했다. 작가가 말하는 심연에 도달하는 과정으로 '고독', '관조', '자각', '용기'의 4단계를 제시했다. 그 첫 단계가 스스로 고독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자기를 알아가는 시작이 고독이라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맞이하는 것은 노년의 고독이다. 원하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와 동행하는 시간이다. 거부할 수도, 몸부림쳐도 소용없이 찰거머리처럼 붙잡는다. 좋은 표현으로 황혼이라 할 것이나 이때의 고독은 외로움이다. 노년이라 하여 사색이나 사유가 아니라 할 수는 없지만 노년의 고독은 회상이라 말하고 싶다. 노년의 고독은 지난날 자신이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정리하는 의미가 더 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늦은 가을날 노을이 물드는 호숫가에서 석양을 바라보는 노인의 모습은 왠지 고독이 그려지는 그림이다. 진취적인 그림이기보다는 정리하는 회고의 그림에 더 가까워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노년의 고독은 외롭고 쓸쓸하기만 하다. 가슴이 한없이 아련해지는 모습이다.


시(詩) '고독'을 쓸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은 황혼의 외로움이었다. 사계절이 인생과 같고, 가을날 해지는 노을을 바라보는 풍경은 노년의 고독이 묻어나는 풍경이다. 황혼이 물들기 까지를 생각 해 본다. 봄이 주는 생명력으로 파릇한 새싹을 틔우고 '청춘'이라는 말로써 모든 것이 용서가 되는 계절을 보낸다. 몰려오는 더위에 청춘은 알이 박히고 씨앗을 품어 '중년'이라는 계절을 만든다. 한껏 달아올랐던 열기가 힘을 잃어 가고, 멀어지는 햇살에 가을을 불러들이면 알곡이 여물어 고개를 숙이는 '장년'을 만들어간다. 고개 숙인 알곡이 다음 세대를 준비할 때 슬며시 찾아오는 텅 빈 들녘의 '고독'이 세상을 붉게 물들여 나간다. 고독이 자라나면 멀어지는 햇살만큼 찬바람 매몰차게 불어오고, 세상을 정리하는 된서리가 고독을 흙으로 불러들인다. 그렇게 겨울은 시작된다. 일생이 그렇게 마무리되는가 보다.

나는 '고독'이라는 시를 쓰면서 한 노년의 신사가 호숫가에 서있는 사진을 보았다. 노인의 뒷모습을 휘감고 있는 노을을 통해 노년의 고독을 표현해 보고 싶었다. 곁에 벤치가 있음에도 지팡이에 의지한 체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을 바라보는 모습은 계절의 고독과 인생의 고독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점차 근육이 줄어들고 지팡이에 의지해야 할 나이지만 벤치를 비워두는 노인은 어떤 마음일까 상상을 해 본다. 자신에 대한 마지막 자존심 일까? 아니면 다시 회춘하고 싶은 욕심의 표현일까? 그것도 아니면 의미 없이 호수를 바라보는 모습이었을까. 내가 저 자리에 서 있다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생각해 본다. 


시들어가는 갈대와 같이 우리 삶도 시들어가면서 우리가 느끼는 고독조차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고독이 찾아와 노크를 한다 해도 덮인 각질에 무뎌져 무심히 흘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나에게는 노년의 고독은 아주 늦게 찾아왔으면 좋겠다. 고독조차 잃어버리는 아픔은 없기를 가만히 바라본다.


글에 사용한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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