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는 눌린 사과처럼 갈변했다
종이는 식지 못한 이력서처럼 떨었다
이름은 접힌 채 숨을 참았다
지위는 도장처럼 타인의 손에서만 선명했다
한 장의 사각형 안에
입김처럼 증발한 계절이 적혔다
회사와 직함 사이
개인사는 삭제되었다
연락처에 매달린 전선이
기억의 탯줄을 미세하게 흔들었다
명함은 나 대신 악수를 건넸다
그러나 한 번도 나를 만지지 않았다
서랍 속엔 548개의 숨결이 눌려 있었고
그중 단 한 번도 내 이름이 불린 적 없었다
지갑 속에서 눌린 채 살아남았거나
의자 아래에서 접힌 채 폐기되었다
명함은 늘 선택받지 못한 쪽에 선다
누군가 나를 꺼낼 때마다
나는 타인의 지문으로 인증되었고
접힌 자국으로 하루의 무게를 견딘다
바람이 나를 흩뜨릴 때
이름이 아닌 존재로 떨어져 내린다
종이 너머,
아무 말도 없다
그러나 누군가,
주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