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그릇

by 소향

물을 담던 그릇은
한때 지구의 무게를 받았다
금은 더 이상 금이 아니다
빛과 어둠이 겹쳐진
기억의 음영
지구가 부서진 소리였다

금 틈이 노래한다
깨진 선율이
바람의 갈래마다 몸을 푼다
입 없는 말들이 떠다니고
그 틈 사이로
무한한 고독이 쏟아진다

기억은 그릇에서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중력의 심연으로
존재의 가장자리에서
시간이 파편처럼 흩어진다

그날
그 꽃은
잎사귀가 흩어진 소리였고
그 아래 접힌 편지는
우주를 가로지른
한 줄기 침묵이었다

그릇을 들여다본다
내 안과 너의 경계가
소리 없이 풀리고
영혼의 틈새마다
작은 별이 박힌다

아직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것들이
내 안과 우주를 잇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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