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팸 구호 Sep 18. 2023

#8 안쪽에 앉는 게 그렇게도 싫으냐?

지하철에서 짜증 났던 얘기를 잔뜩 쓰긴 했지만, 사실 나는 버스를 더 좋아한다. 지하철은 바깥 풍경을 즐길 수가 없어서 그렇다. 가끔 지상에 올라올 때도 있긴 한데, 좌석 배치 상 맞은편에 있는 사람에 가려서 바깥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그래도 당산역에서 합정역으로 갈 때 보이는 한강은 좋다. 그래봤자 앉아서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다만.


아무튼 그래서 앉아서 갈 때 기준으론 바깥 풍경을 훨씬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버스가 더 좋다. 지하철 보다 느리고 차가 밀리면 도착 시간에 변수가 자주 발생하긴 해도, 이런 이유로 급한 게 아니라면 버스를 주로 이용한다. 그리고 똑같이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가도, 왠지 버스에서 음악을 들으며 갈 때가 좀 더 감성이 좋다고 해야 하나...? 뻘소리 같긴 한데 나는 그렇다고.


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버스를 탔다. 요즘에 주로 가던 행선지가 지하철이 훨씬 효율적일 일이 많아서 버스 탈 일이 없었는데, 맨 뒤 바로 앞자리 창가에 앉아 산뜻하게 출ㅂ... 일 줄 알았는데, 그 순간 오래 안 타서 몰랐던 희한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2인 좌석에 앉은 사람들이 죄다 바깥쪽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시간대나 행선지 자체가 사람이 별로 없을 타이밍이고, 내게 피해를 주는 것도 전혀 없어서 뭐 크게 상관은 없었다만, 언제나 그렇듯 쓸데없이 물음표가 찍혔다.


앉을 때까지 인식을 못 했다. 그런데 내가 거의 맨 뒷부분까지 가서 앉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들이 모두 바깥쪽에 앉아 안쪽 자리를 가로막고 있었던 탓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가 자리라고 햇빛이 공격적으로 쏟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만약 사람이 꽉 찬 버스였다면, 비어 있는 안쪽 자리에 앉고 싶은 사람은 바깥쪽에 앉은 사람에게 굳이 양해를 구해야 한다. 떠올려 보니 이 악물고 바깥쪽에 앉으려고 굳이 좌석에서 내려온 다음 다른 사람을 안쪽 자리에 집어넣고 본인은 다시 바깥 자리에 앉는 모습을 봤던 기억이 있었다.


뭐 어느 자리에 앉든 본인 자유이긴 하다. 그런데 앉고 싶지만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행위 자체를 매우 힘들어하는 슈퍼 내향인에겐, 비어있는 안쪽 자리는 휴전선 너머의 북한 땅 수준으로 갈 수 없는 곳이다. 지들이 바깥에 앉고 싶은 건 알겠는데, 니들 때문에 못 앉는 사람이 생기니까 문제라는 거다. 내가 버스를 탄 당시에는 더 앉을 사람 자체가 없었으니 괜찮지만, 그들은 높은 확률로 사람이 많을 때도 기꺼이 그 자리를 지키고자 할 것이다.


물론 안쪽에 앉으면 내릴 때 약간 번거롭긴 하다. 옆에 앉은 사람에게 '잠시만요'나 '내릴게요' 따위의 말을 하고 사이드 스텝을 밟으며 나와야 하니까. 옆에 아무도 없어도 한 걸음을 더 움직여야 하니 한 발짝의 움직임조차 줄이고 싶다면 뭐, 그럴 수는 있겠다 싶다. 그런데 안쪽 자리에 앉았다면 다른 사람이 군말 없이 그냥 앉으면 될 것을, 바깥 자리에 시즈모드를 박은 탓에 귀찮은 단계를 하나 더 만드는 게 문제라는 거다. 


분명 그런 사람에게 '안에 좀 앉으면 안 돼?'라고 묻는다면 '아니, 내가 내 돈 내고 타는 건데 자리도 내 맘대로 못 앉나'라고 반박할 거다. 아무도 없을 때는 네 돈 내고 네가 바깥에 앉든 복도에 누워있든 손잡이에 매달려 있든 상관없는데, 제발 탄 사람이 좀 있을 때는 제발 네 생각만 하지 말고 안에 들어가서 좀 앉아라. 이게 뭐 비행기처럼 수 시간을 가야 해서 안쪽에서 꼼짝도 못하게 갇히는 것도 아니고, 안에 앉아서 한 발짝을 더 움직여야 하는 탓에 빛의 속도로 닫히는 문의 속도를 좀처럼 따라잡을 수가 없는 것도 아니잖아. 나한테 뭔 별 것도 아닌 거 가지고 더럽게 뭐라 하네,라고 할 시간에 남 생각도 좀 해라. 


곧 추석 연휴라 비행기나 기차처럼 멀리 갈 때 타는 교통수단에서 좌석을 선택할 일이 많ㅇ... 아, 이미 다 구매했겠지마는, 아무튼 바깥 자리 마니아들한테는 제발 그런 교통 예매할 때 남은 자리가 안쪽 자리만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하는 수 없이 앉았더니 옆에 문돼 형님만 앉았으면 좋겠다. 하, 이런 걸로 거울 치료가 되려나 모르겠다. 그래 봤자 시내버스 타면 또 바깥에만 앉겠지. 후. 

매거진의 이전글 #7 의자 욕심 좀 내려놔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