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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팸 구호 Sep 04. 2023

#7 의자 욕심 좀 내려놔라

서울 마포구라는 동네는 반드시 웨이팅이 필요한 가게가 매우 많다. 조금 괜찮아 보여서 다음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웨이팅이 있다. 만약 4명을 훌쩍 넘긴 그룹이라면 30분 안에 들어갈 희망 따위는 버려야 한다. 사장님이 테이블을 2개 내어주거나, 테이블 하나에 여분 의자들을 갖다 놓고 꼬깃꼬깃 앉아야 한다. 가게에 여분으로 준비된 의자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른 테이블에 안 쓰는 의자를 쓰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원래 4인 테이블이었던 다른 자리에는 의자가 1개밖에 안 남는 상황도 생긴다.


의자는 하나밖에 없지만 어쨌든 4인석 테이블이 비었으니, 가게 직원은 다음 손님을 그 테이블로 안내한다. 하지만 의자가 하나뿐이라 의자를 가져다 주기를 기다리거나 다른 테이블에 빈 의자가 있는지 둘러보게 된다. 먼저 왔던 그룹은 다른 테이블의 의자를 모조리 쓸어갔지만, 가져오고 보니 의자 하나는 그냥 짐을 올려놓는 용도가 됐다. 짐이라고 해봤자 가방 하나와 휴대폰 정도라도 내 소중한 가방을 땅바닥에 내려놓기는 땅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는 것만큼 싫고, 무릎 위에 올려놓자니 움직이는 데 불편할 것이 아침 드라마 보듯 뻔하다. 가방 주인에게 그 의자는 비 오는 날 장화 같은 존재다. 장화를 안 신었다고 내 신변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지만, 있으면 세상 마음 편한 것처럼.


뒤에 들어온 사람들은 의자가 없어서 우두커니 서 있다가 가방 하나 올려진 그 의자를 발견하곤 "남는 의자인 것 같은데 좀 써도 될까요?"라고 의자 점유인에게 공손히 묻는다. 하지만 그 의자 점유인은 고지를 탈환한 병사의 기세로 "아뇨, 여기 사람 있어요"라며 이 악물고 의자를 지키려 든다. 나중에 들어온 사람은 그 의자에 앉는 사람이 있다고 하니 하는 수 없이 직원이 의자를 가져다주기를 좀 더 기다렸다가 앉게 된다.


어쨌든 나중에 들어온 사람들도 의자가 도착해서 별 탈 없이 앉아 음식을 즐겼으니 되었긴 하다. 그런데 그 의자 점유인은 본인의 가방을 위해 있지도 않은 사람이 있다며 거짓말을 했다. 그래 뭐, 기름기 낭낭할 땅바바닥에 가방 내려놓는 게 싫은 건 이해하는데, 무릎에 좀 올려놓는 건 무슨 시지프스가 평생 밀어 올려야 하는 돌을 올려놓는 것도 아니잖아. 왜 그깟 가방 하나 때문에 무려 지구를 점령한 인간이 서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비슷한 예로 거의 쇼미더머니 1차 예선급으로 웨이팅이 엄청난 가게에서 본인이 좀 쉬고 싶다는 이유로 다 먹고 한참을 앉아 있다 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니들도 분명 기다리고 있을 때 식사를 끝낸 앞사람 보고 왜 다 먹었는데 안 나가냐며 투덜거렸을 거면서. 이토록 내로남ㅂ... 아니 본인이 하는 게 로맨스인지 불륜인지 구분도 못하는 것들이 세상에 너무 많다. 문제는 그런 것들에게 초등학교 도덕 시험을 풀어보라고 주면 아마도 100점에 가깝게 받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알면서도 그러고 있다는 거다. 괘씸하기 짝이 없다. 엇, 본인도 도덕 문제 속에 나오는 사회 구성원 중의 일부라는 생각을 못하는 거라면... 말이 되긴 하네.


본인 가방을 올려놓았던 의자를 의자가 없어 앉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어 준다고 해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다거나, 북핵 문제가 해결된다거나 하는 거창한 평화가 일어난다거나, 잠깐 뿌듯해서 미소 지을 정도로 대단한 배려는 아니다. 다만 타인의 입장에서 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스스로가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는 거다. 그 불편 또한 갑자기 다리 한쪽을 못 쓰게 된다거나 시력을 상실하는 것처럼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 정도의 불편함도 아니지 않나. 언제라도 불편하고 싶지 않다면 저-기 사우디아라비아처럼 전제군주제 국가에 가서 왕실을 몰아내고 왕권을 거머쥐든가.


어차피 그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제발 그들이 가는 곳마다 4인 테이블에 한 명이 앉는 바람에 밥을 못 먹게 되거나, 가는 식당마다 토르 망치처럼 꼼짝도 하지 않는 의자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테이블도 땅바닥과 혼연일체가 되어 헐크급 완력으로 뜯어내지 않는 한 절대 이동이 불가능한 곳이었으면 좋겠다. 4인 테이블에 두 명이 와서 남는 의자 두 개를 각각 가방과 휴대폰을 올려놓는 용도로 쓰는 바람에 6인이 간 그 놈들 일행이 의자 여분이 없어서 다음을 기약하는 사태가 빈번했으면 좋겠다.


그런 것들은 가는 데마다 같은 꼴을 당해서 제대로 거울 치료를 당하지 않는 한 개선의 여지가 없다. 아, 거울을 주먹으로 박살 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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