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 크리스토퍼 놀란

by 규영

2023-08-15

<오펜하이머> 크리스토퍼 놀란

"Theory will only take you so f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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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각자의 일을 한다. 과학자들은 연구를 하고, 공무원들은 공무를 하고, 군인은 싸운다. 이십 이만명의 민간인을 살상한 두 개의 핵폭탄을 떨어뜨리기까지 모두 주어진 일을 했다.

우라늄과 플로토늄은 선악의 저편에 있다. 그저 물리의 법칙에 따라 작동할 따름이다. 스물 여덟가지 원소로 이루어진 오펜하이머와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조금 더 복잡할 뿐.

모든 사건의 범인은 바로 이 복잡성에 있다. 복잡하다는 것. 그래서 예측을 벗어나는 확률을 가진다는 사실이 원자폭탄의 범인이고, 일탈과 배신의 범인이고, 부조리한 인간실존의 범인이다.

오펜하이머와 동료들이 로스 앨러모스에서 최고의 물리 이론으로 맨해튼 프로젝트에 몰두하던 동시대에, 미국으로 건너와 이성과 과학실증주의에 반성을 요구하던 철학자 그룹이 있었다. 아도르노로 대표되는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그들이다.

아도르노에게 있어서 과학실증주의의 문제는 과학을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진리로 봄으로써 과학을 인식의 유일한 근거로 본 데 있다. 다시 말해 이론을 실재와 동일시 함으로써 과학이 권력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권력을 입은 과학은 실험실을 넘어 정치의 장에 놓이게 된다.

단일 원자와 대기간의 반응을 계산하는 데에도 '0이 아닌' 불확실성이 존재하는데, 우리는 세상이 우리가 만든 '법칙'처럼 작동할거라 믿는다.

아도르노는 이성이 '도구적 이성'으로 권력에 기여하는 게 아니라 '비판 이성'으로서 작동할 때, 오직 그런 경우에만, 이론이 곧 실천이 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이론은 언제나 이론일 뿐이다. 도구적 이성이 선지자 노릇을 한 결과는 다름아닌 양차 세계대전과 아우슈비츠의 비극이다.

어려운 말이지만 그는 최소한, 이론의 한계, 즉 세상과 그 자신이, 스스로의 기대와 다를 수 있다는 사실만 자각하더라도 인류가 해왔던 대부분의 실수들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현실은 이론보다', 삶은 영화보다 더 엄정하고, 때때로 훨씬 무정하다.

영화를 통해 오펜하이머라는 한 인물과, 그가 살았던 세계의 복잡성을 보게 된다. 역사와 이야기는 언제나 단순하게 남겨질 뿐이기에, 여기 하나의 해석을 더함으로써 훌륭한 영화에 한 면을 보태본다.

#오펜하이머 #크리스토퍼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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