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마쓰이에 마사시

by 규영

2022-10-23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마쓰이에 마사시

"이렇게 바람이 시끄러워서야 어디 책을 읽겠나. 라디오도 밀리바, 밀리바만 되풀이하고 말이지."
그러고는 난로 옆에 있는 오디오 앞에 쭈그리고 않아 스위치를 켜 베토벤의 교향곡 8번을 플레이어에 올려놓는다. 우치다 씨는 커피를 끓이고, 유키코는 남아 있던 애플파이를 나누었다. 식당 테이블에서 파이를 먹기도 하고, 난로 앞 소파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거나 막 도착한 건축 잡지를 뒤적이면서, 으르렁거리는 비바람에 지워질 것 같은, 그러나 어딘가 경쾌하고 편안한 교향곡을 듣는다고 할 것도 없이 모두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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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명망있는 건축가 무라이 슌스케 선생과 그의 이름을 딴 설계소 사람들이 국립현대도서관 경합을 준비하기 위해 여름 별장에 합숙하던 몇달간의 이야기다.

물흐르는 듯한 전개와, 섬세하고 세밀한 묘사 덕에 눈으로 글자를 읽는 동시에 머리속으론 그림을 그리고 냄새를 맡고 촉감을 느끼며 책을 읽었다.

공간은 공간마다 하나의 세계이다. 사물/사태는 주어진 공간에 의해 해석되어지고, 우리는 공간을 통해 사건을 기억하기에 그러하다. 그런가하면 우리는 신체로서 스스로 하나의 공간이며, '살'을 통해 안팎의 공간과 교감한다. 그러므로 집, 학교, 골목, 산책길 등 살면서 내가 만나온 공간은 나를 형성한 세계라고 볼 수 있다.

작가 마쓰에이 마사시에게 하나의 작품관이 있다면 분명 그 중심엔 공간에 대한 철학이 있을테다. 생생한 묘사에 일본 특유의 낭만적 정서까지 더해져, 책을 마치고 한동안은 마치 그 해 여름, 무라이 별장에 나도 같이 있었던 것 마냥 그곳에 그리움이 들었다.

회상이라는 장치를 쓴 건 분명 훌륭한 선택인 것 같다. 기억이라는게 머리 뿐만 아니라 몸에도 새겨지는 것이라면, 새겨진 기억들이란 현실보다 혹은 사실보다 따뜻하고, 맛있고, 신선하고, 멋지고 짜릿한 것일 테니.

처음으로 일본을 제대로 여행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 넘고 물 건너 그곳에 남은 여름 향기를 맡아보고 싶다. 아니 어쩌면 그곳에 여름을 남기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여름은오래그곳에남아 #마쓰이에마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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