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말했다. "수혈 거부는 애덤의 결정입니까? 아니면 정말로 증인의 결정입니까?" "우리가 원한다 해도 그 애 마음을 돌리진 못할 겁니다."
.
벡혈병으로 인해 긴급 수혈이 필요한 소년이 있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종교적인 이유로 이를 거부한다. 소년이 아직 법적으로 자율권을 보장받는 18세가 아니었으므로 의사는 법원에 긴급수혈명령을 신청한다.
존경받는 고등법원 판사 피오나는 판결에 앞서 소년 애덤을 만나본다. 그리고 수혈을 거부하는 애덤의 순전무구한 얼굴을 본다. 소년은 피오나와의 대화에서, 그리고 피오나에게서 새로운 존재의 의미를 발견한다.
피오나는 해오던 대로 아동의 복지에 대한 자신의 법리적 해석에 따라 권위있는 판결을 내리지만, 이후 펼쳐진 애덤의 삶은 그녀의 토대를 뒤흔든다.
짧은 호흡에 숨가쁘게 읽다가, 잠시 멈춰서 한참 생각하다, 또 흐르는 연주를 따라가며 몰입하기를 여러번 반복했다. 저자의 명성에 걸맞게 치밀한 문학적 구성 위에 많은 질문거리와 사회적 함의를 담고 있는 책이었다.
타자에 의해 결정되는 인간의 취약한 생사와 그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운'과 우연들.18세와 17세의 사이 어딘가에 있는 인간의 자율성과 주체성. 부모와 법원 사이에 놓여 있는 책임의 문제. 믿음과 세뇌 사이에 놓인 위태로운 신앙. 자녀의 욕구와 부모의 욕망 사이, 교육과 가스라이팅 사이, 아동복지와 아동학대 사이의 딜레마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결정하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법이란 특정 시대속에 합의된 이상을 담은 텍스트이다. 그래서 법은 언제나 과거의 정의이고, 해석과 재해석되어야 할 정의이다. 그런가하면, 판결이란 결국 사건이 아닌 사람에게 내려지기에 한 사람의 과거-현재-미래가 함께 심판대에 서게 된다. 이 때문에 판결은, 정의로운 법원이라면, 명석판명이 불가능하다.책을 읽으며 데리다가 justice와 Justice를 구분한 까닭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한편, 죽음에 가까이 선 소년의 위태로운 '얼굴'을 마주하는 사건이, 엘리트 판사 피오나에게 새로운 존재의 지평을 열어젖힌다는 점에서 작가 이언 맥큐언은 '의미'의 타자성과, 타자를 통해서만 가능한 레비나스의 주체 개념을 말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