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수 3번이면 그 판은 진다.

사업을 맡은 1년의 메모

by 곰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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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을 주로 맡아오던 내가 처음으로 사업총괄이라는 역할을 맡은 지, 어느덧 1년이 조금 지났다. 돌이켜보면 전혀 준비되지 않은 전환은 아니었다.

대학에서 세무학을 전공하며 숫자와 손익 구조에 익숙했고, HR을 하면서도 늘 P&L 관점으로 조직과 제도를 바라보려 애써왔다. 데이터 분석을 좋아해 성과와 문제를 감각보다 지표로 확인하는 방식을 선호했고, 기획실에서 DX 업무를 하며 기술 트렌드와 비즈니스의 접점을 다뤄온 경험은 지금의 AX 흐름을 따라가는 데에도 분명 도움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구조를 다루던 HR과, 시장과 경쟁, 그리고 실행 속도가 동시에 작동하는 사업은 일의 속성이 달랐다. HR이 한 시점의 상태를 정확히 읽어내는 snapshot의 해상도를 높이는 일이라면, 사업은 맥락과 흐름 속에서 방향을 잡아야 하는 flow-based work에 가깝다. 밸런스 시트와 손익계산서의 차이와 비슷한지도 모르겠다. 사업은 생각보다 훨씬 더 흐름에 민감했고, 한 번 어긋난 흐름은 쉽게 되돌릴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올해 사업을 하며 가장 인상 깊게 남은 문장은 지난 5월, 2025 하이파이브 컨퍼런스에서 KDC 김동호 대표님의 세션에서 들었던 이 말이었다.
“묘수 3번이면, 그 판은 이미 진다.”

사업에서 ‘묘수’가 자주 필요해진다는 건 창의성이 발휘되고 있다는 신호라기보다, 구조와 흐름이 이미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에 가깝다.
“이번 한 방으로 뒤집자.” “이 딜만 되면 판이 바뀐다.” “이 기능 하나면 충분하다.”
이런 문장이 반복될수록 사업은 점점 전략의 영역이 아니라 운의 영역으로 밀려난다.

비슷한 교훈을 주말이면 즐겨보는 UFC에서도 자주 느낀다. 볼카노프스키처럼 정말 강한 파이터는 럭키 펀치나 KO 한 방을 노리지 않는다. 상대가 잘하는 걸 못 하게 만들고, 본인의 특기를 유지한 채 라운드마다 흐름을 가져온다. 화려하지 않지만, 가장 확실하게 이긴다.

사업도 다르지 않다. 잘하는 사업은 묘수를 찾는 대신, 경쟁자가 힘쓰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고 우리가 반복해서 이길 수 있는 영역을 좁히며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스럽게 격차가 벌어지게 설계한다.

결국 이기는 사업은 최고의 한 수를 두는 것이 아니라, 점점 유리해지는 흐름과 판을 만드는 일에 가깝다. 사업 리더가 해야 할 일은 묘수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묘수가 필요 없는 판과 흐름을 설계하는 일이다. 내년 사업을 준비하며 이 생각을 곱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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