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서 겪어야 했던 일들

같은 사람입니다

by 청아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들은 지극히 개인적으로 직접 겪었던 것을 바탕으로 하는 말들이다. 제목만으로 혹시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먼저 말을 한다. 지금까지 직장 생활에서의 일들이 직접 겪었던 것들인데 이번 이야기는 많은 여자들이 겪었던 겪고 있던 거라고 생각할까 봐 걱정되는 마음이 먼저 앞선다.


첫 직장에서의 일이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 실습으로 들어갔던 회사에 정직원이 되었다. 대부분의 시간들은 평범했다. 모든 것들이 처음 접하는 것이기에 신기하기도 했었다. 여직원들만의 다과 자리에서 각자 부서의 회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은 내가 미성년자이기도 했기에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20살이 되고 생산 부서의 첫 회식을 참석하게 되었다. 부서에서 여직원이 나 혼자였기에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다. 회식을 가기 전 다른 부서 여직원 선배에게 문의를 했더니 그냥 밥만 먹고 오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가게 되었다. 회식은 1차, 2차까지 했었다. 1차는 고깃집에서 밥을 먹고 간단하게 술을 마시며 가볍게 시간을 보내는 줄 알았는데 일 이야기도 오고 갔다.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래서 밥을 먹으면서 고기를 구웠다. 한 번도 고기를 구워 본 적이 없었는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고기와 집게를 나에게 건넸다. 처음 고기를 구웠으니 잘 해내지 못했다. 그러니 '고기 너무 못 굽네. 처음 구워보니?' '네, 항상 엄마 아빠가 구워주셔서 처음 구워봐요. 죄송해요.' 죄송할 일도 아닌데 분위기상 사과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 오늘은 내가 할게. 고기 굽는 거 배워와. 다음엔 네가 해야 하는 거야.'

회식 1차가 끝나고 2차로 장소를 옮겼다. 2차는 노래방이었다. 노래방은 가족과도 한 번씩 갔었으니 별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노래방에서는 술을 팔았던 거다. 회식을 할 때까지만 해도 노래방에서 술을 파는지도 몰랐다. 그때까지는 술을 마셔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몰랐다. 내가 처음 술을 마셨던 것도 20살 가을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는 술을 마셔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분위기를 살펴보고 '아~~ 노래방에서 회식을 하면 술도 같이 마시는구나.' 알게 되었다. 각자 한곡씩 노래를 돌아가며 불렀다. 순서가 내가 되었다. 사무실 직원들과 나이 차이가 있어 요즘 애들은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 궁금해하기도 했었다. 내가 아는 노래로 한곡을 불렀다. 아마 신승훈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발라드였다. 직장 상사의 기준에 맞춰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것을 아는 나이가 아니었다. 분위기를 보니 한곡을 더 불러야 했다. 제일 젊은 주임님이 트로트 한곡을 선정해 주었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는데도 모두 술도 마시고 실력들이 고만고만하여 대충 넘어가게 되었다. 그리곤 지금도 잊히지 않은 일이 있었다. 젊은 사람부터 시작하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서 차장님, 부장님 차례가 되었다. 그분들은 호기롭게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내 손목을 잡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저 자신들의 흥에 취해 추는 것이었지만 나를 세워놓고 하는 행위들이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어쩔 줄 몰라했다. 제발 이 회식이 빨리 끝나기를 기도했다. 2차까지의 회식은 새벽 2시가 되어야 끝이 났다. 사무실에서 제일 어린 직원이었고, 여자였기에 늦은 새벽에 혼자 귀가시키기 양심에 찔렸는지 주임님이 집까지 배웅을 해주셨다. 한 번도 늦은 시간에 귀가를 한 적이 없었기에 딸이 들어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시던 아빠였다. 주임님이 직접 회사에서 회식이 있어 늦어서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셨고, 아빠는 아직 어린 직원을 늦게까지 집에 보내지 않았다고 한소리를 하셨다. 나는 오히려 주임님에게 죄송하다고 말을 했었다. 나의 첫 직장에서의 첫 회식이자 첫 경험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갔던 사무실은 여직원이 대부분이었기에 첫 직장에서의 회식은 경험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더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2000년 초반이었으니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일이다. 사무실의 회식은 별다른 일은 없었다. 아이가 있는 선배들은 너무 늦은 시간에 귀가하는 것을 꺼려하여 대부분 1차에서 끝이 났다. 2차를 가는 경우는 시간이 맞아서 더 술을 마시거나 노래방을 가거나 했다. 선배들을 위해서 노래 부르는 것보다 탬버린을 치며 분위기를 맞춰주는데 주력을 했었다. 노래를 잘 못 부르는 나였기에 노래를 부르지 않는 행위들이 훨씬 편했다.

그때의 회계사무실은 거래처 사장님들과 식사하는 일들이 많았다. 대부분은 점심 식사 자리였지만 가끔씩은 저녁 식사 자리일 때도 있다. 저녁에 만나는 자리는 접대 자리이기에 사무장만 가는데 한 번씩 거래처 사장이 회계담당자와 같이 참석을 하라고 할 때도 있다. 그래서 사무장과 함께 가게 된 저녁 식사 자리였다. 거래처이기에 그동안 궁금한 사항들을 서로 물어보며 밥을 먹었다. 이때는 술과 함께 반주를 하는 일이 많았다. 그리곤 거래처 사장의 술잔에 술을 채워 넣는 일을 내가 해야 했다. 나는 사무장에게 왜 내가 술을 따라야 하냐고 조용히 따졌지만 밥만 먹고 갈거니 잠깐만 참아달라고 했다. 그래서 참았다. 그런데 정말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을 듣고 말았다.

'같이 저녁 먹어서 좋네요. 역시 술은 여자가 따라줘야지 맛있어.'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거래처 사장이기에 최선을 다해 참고 참았다. 그리곤 다음부터 그런 자리는 절대 참석하지 않았다. 한 번씩 사무장의 부탁이 있었지만 다시는 그때와 같은 일을 겪고 싶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 사무실만 그런가 했지만 그때는 종종 있었던 일이었고, 주변의 사람들도 한 번씩은 겪었던 일이었다.

모든 남자 사장들이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아주 젠틀한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을 뿐이다.


나는 생리를 시작하고부터 생리통에 시달렸었다. 어릴 때는 병원에 가도 특별한 진료를 받지 않았다. 그때는 진통제가 최고의 처방이었다. 30살이 넘어서 자궁에 근종이 생겨서 생리통이 심할 것이라고 했다. 그전까지는 자궁에 혹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저 체질이 그렇다고만 했다. 그래서 한 달에 한번 하는 생리를 할 때마다 진통제를 달고 살았다.

한참 일을 하고 있을 당시에는 생리통으로 인한 휴무라는 것이 없을 때라 몸이 아파도 사무실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는 모습을 본 선배들은 '또야? 그래서 일은 할 수 있겠어.'라며 혀를 끌끌 차기만 했다. '아프면 너만 손해야. 우리가 하는 일이 다 각자 해야 하는 것인데 아프면 너만 고생해. 몸 잘 챙겨.'

혹시 아파서 일을 못하게 되면 자신들에게 일거리가 넘어가 늘어날까 지레짐작으로 나에게 내뱉었던 말들이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도 서러웠나 보다.



결혼을 하고 난 후 취업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서류에서는 합격, 최종 면접에서 탈락하는 일이 많았다. 면접에서의 주된 질문은 '결혼했으면 아이를 낳을 거죠?' '흠,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했다고 하는 거 아니에요.?'

여자가 결혼을 한 것이 뭐가 문제가 되는 것인지, 임신을 할 수도 있지 그게 뭐가 문제가 된다는 거지?

면접에 통과하고 다녔던 회사는 회계사무실이 아닌 일반 중소기업이었다. 다니는 동안 임신 언제 할 건지를 체크하듯이 물었다는 것이다. 결혼 생활 초반에는 임신 계획이 없었기에 회사를 다니는데 문제없었지만 잊을만하면 질문하는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이다.

세월이 많이 지나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종종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여성들을 볼 때마다 '아직도 멀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집안 사정으로 계속 일을 할 수 없었다. 시아버지, 시어머니의 건강 문제로 직접 간병은 하지 않았지만 병원 방문을 계속해야 했던 시기들이 있었다. 그래서 꾸준히 일을 할 수 없어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하게 되었다. 그러다 다시 입사하게 된 사무실은 결혼 전에 했었던 회계업무, 회계사무실이었다. 이곳은 회계법인 사무실이었고, 나름 규모가 있었다. 대부분은 대표자(회계사, 세무사)와 사무장으로 되어있는데 이곳은 전무라는 직책을 가진 분이 계셨다. 이 사람은 국세청 공무원 출신이어서 거래처의 세무조사를 원활하게 마무리할 수 있게 하는 업무를 하셨다. 그래서 아무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는 무척 유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불편한 진실들이 있었다.

한 번씩 면담을 했었다. 처음 면담은 그저 직원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두 번째 면담은 불편했다.

결혼을 했다고 하니 대놓고 남편과의 관계는 어떻냐고 물어보고는 임신 계획에 대해서 물었다. 자신도 딸이 있어서 걱정되는 부분들이 많다면서 질문하는 척했지만 약간의 성희롱이 담겨있었다. 나는 바로 불편함을 이야기했고, 그다음부터는 그런 일이 없었다.


한 번은 결혼 7년 만에 임신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회사와 연봉 계약건으로 협상 중이기도 했었다. 결국엔 서로 간의 생각 차이 때문에 퇴사를 결정하고 일을 정리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때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다. 어차피 얼마 안 있으면 퇴사를 할 예정이었기에 미리 알려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거래처와의 약속이 잡혔다. 회계사와 함께 외근을 나가야 되는 상황이었다. 임신 초기라서 조심을 해야 하지만 내가 직접 운전을 하는 것이 아니기에 상관없을 줄 알았다. 왕복으로 2시간 넘게 차를 타야 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고, 회계사의 운전 솜씨가 매우 터프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외근을 나갔다 와서인지 몸이 좋지 않았다. 병원에 진료를 받아보니 아무래도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 하여 그 뒤로는 퇴사할 때까지 사무실에서만 있었다. 보통 퇴사가 결정이 나면 자신의 서류들을 대충 해놓고 나가는 경우들이 많았다. 그런데 내가 맡았던 회계장부들은 거래처 사장님들도 까다로왔던 것도 있고, 특이한 경우들이 많아서 대충 마무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무실에서만 일을 했지만 야근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아주 늦은 시간까지 일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 몸은 약간의 야근도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엔 유산을 하게 되었다. 유산의 경험을 안고 그 사무실은 퇴사하게 되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여자라서 겪게 되는 일들이 있다. 모든 여자들이 겪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20년 전과 지금은 많이 달라진 사회이지만 여전히 불편한 진실들이 있다. 여전히 바뀌지 않고 대물림되듯이 이어지고 있는 것들도 있다. 남자도 그들만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일들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들처럼 성적 대상으로 농담을 건네받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자의 몸은 폐경이 되기 전까지 가임기 상태라서 호르몬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건강하게 멀쩡한 사람도 많지만 나처럼 호르몬 변화에 따라 건강에 적신호가 오고 생리를 할 때마다 생리통에 시달리는 사람도 많다. 이런 상태를 모르면서 그저 기분이 오라가락 한다며 '이래서 여자랑 일하는 것은 안 좋아.'라고 말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임신과 출산으로 경력 단절이 된 여자들이 다음 행선지는 마트로 향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함께 고민해 주면 좋겠다. 요즘은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일하는 여성을 선호하지만 대우는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여자도 남자와 같은 사람이고, 어엿한 사회인이다. 함께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을 하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