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방향을 다시 수정하고 보통의 엄마가 되기로 했다
30대 후반부터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들면서 무기력과 우울증이 오다 가다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청소년기에도 사춘기를 겪지 않았던 나인데 어른이 되어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8년 내 나이 마흔이 되던 해 더 이상 사는 재미가 없었습니다. 새로운 시도를 했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버릇처럼 말하는 남편에게도 더 이상 기대감이 없어졌습니다. 어디에도 나를 담을 곳이 없었습니다.
아이 없이 살기로 처절하게 선언했고, 더 이상 언급하지 않기로 했는데 간간히 훅 들어오는 시어머님은 미련이 남으셨나 봅니다. 아주버님이 이혼을 하셔서 친손녀를 거의 볼 수 없으시니 막내아들인 남편에게 기대를 걸었건만 정작 이들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하니 한편으론 속상하셨나 봅니다. 한 톨의 희망을 버리시지 못하셨는지 며느리인 저에게 잊을만하면 물어보시니 이 또한 끝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나를 챙기기에도 바쁜 시기였는데 임신에 대한 스트레스는 여전히 저에게 숙제처럼 남아 저를 괴롭히기도 했습니다.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는 나는 생각했습니다.
‘아이라도 있으면 내 삶이 나아질까?’
‘평생을 남편만 바라보며 살 수 있을까?’
내가 내린 결론은 아이가 있다고 내 삶이 더 나아질 것 같지는 않지만 평생을 남편만 바라보며 살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특별한 위기가 있지 않는 이상 평생을 같이 살겠지만 잠시라도 시선을 돌릴 곳이 필요했습니다. 평생 설레는 마음으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잖아요. 심장이 계속 그러면 죽을 수도 있다고. 그러니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한 거라고.
남편에게 이러한 저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그저 아이에 대한 미련이 있으니 더 늦기 전에 최후의 방법까지 시도를 해보자고 했습니다. 여전히 임신에 대한 압박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으니 마지막까지 해보고 안되면 최종적으로 포기하기로 말이죠. 마지막 방법까지 시도를 해봤는데도 안되었으니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산부인과 난임 센터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난임에 관해서 진행을 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두어 달은 자연 임신 시도를 할 수 있게 배란일을 알려주고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아마도 건강보험센터에 난임에 관하여 전달할 자료가 필요했을지 모르겠지만 두 달 후 남편과 같이 방문하여 각종 검사를 받았고, 결과는 남편 쪽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난임 시술에 대해서 배란일을 봐야 하기 때문에 어떤 시술을 할지 말지 결정 후 다시 방문을 하라고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한번 남편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최종 결정을 위해서 말이죠.
“어떻게 생각해? 정말 아이를 가질 생각이 있는 거야?”
“내 생각이 중요한가. 네 생각이 중요하지.”
“무슨 소리야. 2세 계획을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 거야. 정말 원하지 않으면 말해줘.”
“아니야, 네가 원하는 거면 나도 원하는 거야.”
“그럼, 나는 지금 아이를 원해. 내 결정에 그냥 따라줄 거야.”
“그럼, 네가 원하고 좋으면 나도 원하고 좋아.”
이 말은 그동안 남편도 아이가 있었으면 했던 걸까요. 저는 그렇게 들렸습니다. 그리곤 현재의 삶의 방향을 아이 없는 삶에서 아이 있는 삶으로 방향을 수정하고 보통 엄마가 되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지금 나의 선택에 환호를 부를지 후회를 할지 모르지만 가보지 않았던 길이기에 일단 한번 가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결국 난 엄마가 되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