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 앞에 섰다 – '그림책 도슨트'라는 생소한 단어와 첫 만남
그날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오후였습니다.
서점에서 무심코 집어 든 그림책 한 권이 내 삶에 새로운 이름을 선사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남기림 작가의 『너무 가벼운 아이와 너무 무거운 아이』. 표지를 넘기자마자 저는 한 장면 앞에서 오래 멈춰 서게 되었습니다. 하늘로 솟아오른 아이와 땅속으로 내려간 아이가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이었습니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그 한 장면이 조용히 내 마음을 붙잡았습니다.
그날의 기분, 멈춰 있던 생각, 말로 꺼내지 못했던 감정들이 고요히 그 그림 위에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림책은 아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이 스며들었죠. 삶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는 어른에게도 그림책은 그림과 여백 사이로 말을 건넬 수 있다는 것을. 말보다 더 깊고 선명하게 다가오는 메시지가 그림 한 장에 담겨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엔 단순했어요. 아이를 위해 그림책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책을 잘 읽어주고, 잘 소개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의 방향이 조금 달라지더군요. 나는 그림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바라보고 감정을 짚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습니다. 그림과 글 사이의 여백을 바라보며, 그 속에 숨은 감정 하나를 건져 올리는 조용한 해설자가 되고 싶어진 것이죠.
그러던 어느 날, 미술관에서 도슨트의 해설을 들으며 문득 생각했습니다. 그림책도 하나의 예술 작품 아닐까? 그렇다면 그림책에도 도슨트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림책 도슨트."
처음 이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었을 때의 설렘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낯설지만 묘하게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이름이었던 것이죠. 요즘은 '그림책 큐레이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책을 추천하고, 독서를 도와주고, 전시를 기획하는 분들까지.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른 길을 가보고 싶었습니다.
스스로에게 질문했죠. 그림책 도슨트란 무엇일까? 그리고 스스로 답을 했습니다. 그림책 한 권을 예술 작품처럼 감상하며, 이야기와 그림을 연결해 해석해 주는 해설자. 그림 속 상징과 감정선, 구성 요소를 해석하고, 글 없는 그림책의 의미를 끌어내며, 연령대별 감상 포인트를 제시하는 사람. '읽어주는 것'을 넘어 '함께 해설하고 이끄는' 사람.
그렇게 저는 '그림책 도슨트'라는 생소한 단어 앞에 처음 섰습니다.
아직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기에 더욱 설레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이 새로운 이름과 함께, 그림책을 통해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길을 걸어보려 합니다.
책장을 넘기는 손끝에, 조용히 마음을 건네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며.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길, 그림책 도슨트의 첫걸음이 시작되었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