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밤의 벚꽃, 낮의 푸른 나무

by 청아

햇살이 가득한 낮의 나무는 조용했다. 푸르른 잎사귀, 두툼한 줄기, 뿌리내린 흙은 어린이공원의 중심을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저 오래된 보호수라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해가 지고, 그림자가 길어질 무렵— 달이 떠오르면, 나무는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그날 밤도 마찬가지였다. 달빛이 느티나무의 가지를 부드럽게 쓸고 지나자, 나뭇잎 사이로 은은한 빛이 새어 나왔다. 푸르던 잎이 조금씩 분홍빛으로 바뀌더니, 소리 없이 벚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한 장, 또 한 장.


바람도 불지 않았지만 꽃잎은 나무 주위를 천천히 맴돌며 떠다녔다.

꽃잎 하나하나는 마치 작은 등불 같았고, 그 안에 희미한 영상들이 떠올랐다.


"너랑 말하기 싫어. 우리에게 말 걸지마. 왕따 주제에."

"엄마, 왜 아빠는 우리 집에 안 와?"

"선생님, 미안해요. 저 시험 망쳤어요."


에일라는 천천히 나무 아래에 나타났다. 한복처럼 보이지만 현대적인 디테일이 섞인 무채색의 옷차림. 그녀의 발끝이 땅에 닿자, 주변의 기운이 바뀌었다.


그녀는 벚꽃 잎 하나를 손에 쥐었다. 그 속에는 낮에 그녀에게 다녀간 소녀, 지윤의 기억이 담겨 있었다.

'따돌림을 당해도 말 한마디 하지 못했던 소녀.'

'하지만 울지 않았다. 울 수 없었다.'

'그 아이의 내면 깊은 곳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아직 남아 있었다.'


에일라는 그 기억을 조심스럽게 손바닥 위에 놓고, 작은 유리병처럼 생긴 '기억병'에 담았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청아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쌍둥이를 키우며 매일의 일상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은 언제나 새롭고, 그 안에서 작은 통찰을 발견하며 글을 씁니다.

180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23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2화1화. 기억을 지우는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