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 시술 성공, 임신 성공기
배아 이식 후 골반 쪽에서 시작되는 통증으로 하루하루 배가 콕콕 아팠습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9일째가 접어 들어가면서 여전히 통증과 불편감은 있지만 배아가 착상을 했을 거라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벽 5시가 넘어가면서 갑자기 배가 찢어질 듯 아프고 현기증과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이 될 때까지 화장실을 들락날락했습니다. 두 시간 넘게 씨름하다 갑자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증상이 말끔히 나았습니다. 그리곤 불안한 마음이 커졌습니다. 아무래도 착상에 실패한 것 같았거든요. 아침에 일어나 임테기로 확인을 해볼까 하다 이내 그만두었습니다. 병원에서 확인되지 않았으니 미리 실망을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에서 처방해준 질정제등의 약은 계속 복용을 했습니다.
남편에게도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2018년 8월 22일 1차 피검사하는 날. 불안한 마음에 먼저 남편에게 병원 동행을 부탁했습니다. 아침부터 안절부절못하는 저를 보고 남편은 “걱정 마, 결과가 좋을 거야.”
“당신이 어떻게 알아? 기대는 하지 않을 거야. 실망하고 싶지 않아. 당신도 기대하지 마.”
“아니야, 기대해도 좋아. 내 말을 믿어봐.”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을 하는 거야.”
“사실은 내가 꿈을 꿨어. 근데 좋은 꿈이야. 그러니깐 좋은 소식이 있을 거야.”
무슨 꿈을 꿨는지 물어봐도 대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모릅니다. 왜 가르쳐주지 않는지 남편의 마음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피검사 후 진료시간까지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진료실로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갔습니다. 결과는 통과!
2차 피검사까지 마무리해야 최종적으로 임신인지 아닌지 통보를 해줍니다. 이틀 뒤 2차 피검사는 혼자 병원에 갔습니다. 2차 검사 때까지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습니다. 1차 피검사는 일단 통과했으니 2차도 통과할 거라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2차 피검사는 1차 때보다 일찍 결과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대기 시간이 10분 남짓 했던 것 같습니다. 결과는 2차도 통과!
그리고 담당 의사 왈 “피검사 수치가 1000이 넘어 아무래도 쌍둥이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은 초음파로 확인되지 않으니 확인될 때까지 기다려봅시다. ”
일주일 후 병원 검진 있는 날,
“축하해요. 착상이 잘 되었네요. 아기집도 보이네요. 그리고 쌍둥이이네요. 아니 세 쌍둥이이네요.” “네? 세 쌍둥이요?”
세상에 삼태아입니다. 쌍둥이도 모자라 세 쌍둥이라니.
배아 이식을 3개를 했었는데 그게 모두 착상이 된 거였습니다. 그리곤 모두 낳을 것인지 선택 유산을 할 것인지 선택을 하라고 하더군요. 쌍둥이도 조산의 위험이 큰데 세 쌍둥이는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선택을 했습니다. 쌍둥이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운이 좋아 3명의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키울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곤 임신 7주 차에 선택 유산을 했습니다. 선택 유산도 위험부담이 있었습니다. 맘 카페에 들어가서 찾아보니 선택 유산으로 아이들 모두를 잃은 사람들도 꽤 많았습니다. 다시 생각을 해봐도 세 쌍둥이는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결정 후 선택 유산을 했습니다. 이거 할게 못됩니다. 선택 유산을 하는 방법이 조금은 잔인하더군요. 임신 7주 차이면 아기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세명의 아이들 심장소리를 모두 듣고 난 후 그중 제일 시술을 하기 위험부담이 적은 쪽 태아를 초음파로 확인하면서 심장에 주사를 주입해 심장을 멈추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시술을 받는 저도 임신한 상태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마취제를 사용을 하기 때문에 수술실에 들어가서 시술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고 느껴야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렇게 유산시킨 아기에게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한 아이를 떠나보낸 후 37주간의 임신 기간을 혹독하게 보내고 2019년 4월에 이란성 남매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그렇게 나는 마흔에 늦깎이 쌍둥이 엄마가 되었습니다. 저도 보통의 엄마들처럼 보통 엄마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