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이야기꾼

쌍둥이와 함께하는 워킹맘의 소설 쓰기 이야기

by 청아

오늘도 시곗바늘이 밤 열한 시를 가리킨다. 쌍둥이 아이들이 마침내 깊은 잠에 빠져든 지 한 시간이 지났고, 남편은 아직 퇴근 전이다. 비로소 혼자만의 시간이 되었다.

부엌 싱크대에는 설거지가 기다리고 있고, 세탁기에서 돌아가는 세탁물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오늘은 그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노트북을 켠다. 화면이 밝아지면서 내 마음도 함께 환해진다.

만 나이로 마흔다섯 살, 회사에서는 경영지원의 모든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워킹맘이다. 밤이 되면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현실의 무게와 책임감을 잠시 내려놓고, 상상의 세계로 떠나는 이야기꾼이 되는 것이다.


시작은 우연이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작년 가을이었다. 쌍둥이가 6살이 되면서 조금씩 손이 덜 가기 시작했고, 어느 날 밤 문득 예전에 읽었던 소설이 생각났다. "나도 이런 이야기를 써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일기를 쓰는 기분이었다. 하루 종일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통로 정도로 생각했다. 가을에는 아직 회사를 다니지 않았지만 입사를 위한 면담을 하고 있던 시기였고, 아이들과의 실랑이, 남편과의 사소한 갈등들을 픽션으로 포장해서 써 내려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쓰면 쓸수록 재미있어지는 것이었다. 평범한 일상이 소설 속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변화했다. 마트에서 만난 낯선 사람이 소설 속에서는 신비로운 인물이 되고, 아이들의 말썽이 모험의 시작점이 되었다.


밤의 마법

아이들이 잠든 밤 시간은 정말 마법 같다. 낮에는 "엄마, 엄마" 하며 끊임없이 부르는 목소리, 회사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이 머릿속을 맴돌지만, 밤이 되면 모든 것이 고요해진다.

조용한 방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시간.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다. 현실의 엄마, 직장인이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창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 시간 정도 쓰다가 잠자리에 들었는데, 요즘에는 새벽 두 시까지 쓰는 날도 있다. 물론 다음 날 아침이 힘들긴 하지만, 그 피로감마저도 달콤하다.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이 있기 때문이다.


일상이 소재가 되다

워킹맘으로 살면서 겪는 모든 경험이 소설의 소재가 된다는 걸 깨달았다. 아침에 아이들 등원 준비를 하면서 드는 생각, 회사 회의에서 느끼는 감정, 퇴근길 지하철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표정까지. 모든 것이 이야기의 씨앗이 된다.

특히 쌍둥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특별한 경험들이 소설에 많이 반영된다. 한 뱃속에서 태어났지만 성격은 정반대인 아이들, 하나가 아프면 다른 하나도 걱정되는 마음, 둘을 동시에 돌봐야 하는 현실적인 어려움들. 이런 경험들이 소설 속에서는 판타지적 요소와 만나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한다. 아직 쌍둥이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기획단계이고, 먼저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을 만들어 주려고 준비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아이들이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다가 '만약 이 아이들이 마법사 쌍둥이라면?' 하는 상상을 했다. 가족과 회사에서 인사 업무를 맡고 있기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입장이다 보니 ‘내 이야기를 한 사람에게만 해야 한다면? 혹여 내 기억을 지우고 싶다면?’ 하는 상상도 해봤다. 그래서 브런치스토리에 기억을 지워주는 마녀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중이다.


나만의 비밀

아직 누구도 내가 소설을 쓰고 있다는 걸 모른다. 남편은 내가 밤늦게 노트북을 하는 걸 보고 "회사 일이야?"라고 묻지만, 그냥 "응, 좀 봐야 할 게 있어"라고 얼버무린다. 굳이 거짓말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아직은 이 시간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엄마 뭐 해?"라고 물어올 때도 "그냥 컴퓨터 좀 보는 거야"라고 대답한다. 언젠가는 말해야겠지만, 지금은 이 은밀한 즐거움을 혼자만 간직하고 싶다. 마치 어린 시절 일기장에 자물쇠를 채우듯, 이 창작의 시간만큼은 나만이 아는 비밀 정원 같은 느낌이다.


작은 성취들

브런치스토리에 연재하기 시작한 소설에 하나의 댓글이 달렸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라는 글을 보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나의 이야기를 관심 있게 봐주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 기분이 좋았다. 내가 밤새 고민하며 써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비록 하나의 댓글이지만 용기가 생긴다.


꿈은 계속된다

요즘에는 더 큰 꿈을 꾸게 된다. 언젠가는 출간도 해보고 싶고, 문학상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물론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일상이 더 풍성해진다.

다가올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도 도전을 해볼 생각이다.


아침에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회사에 출근해서 업무를 처리하고, 퇴근 후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들 숙제 및 한글 공부를 봐주는 반복적인 일상.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밤에 쓸 이야기의 소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새롭게 느껴진다.


나만의 시간, 나만의 세계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던 것은 산후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상상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도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마흔을 넘어서 찾은 새로운 취미, 아니 이제는 취미를 넘어선 열정이다. 젊을 때는 시간이 없어서 못했고, 아이가 어릴 때는 여유가 없어서 못했던 일을 이제야 시작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지금이기에 쓸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워킹맘으로서의 경험, 쌍둥이 엄마로서의 특별한 일상, 마흔 대 중반 여성으로서의 성찰. 이 모든 것들이 내 소설의 힘이 된다. 젊은 작가들이 쓸 수 없는, 오직 내가 써낼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렇게 믿고 있다.

오늘도 새벽 한 시에서 두 시쯤 잠자리에 들 것이다. 내일 아침이 힘들 것을 알면서도 한 문단만 더 쓰고 싶다. 이런 마음, 이런 시간이 있어서 하루하루가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 글을 쓴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이렇게 소소하게 글을 써 내려가며 나를 위로하는 이 시간이 좋다.


나는 낮에는 워킹맘이지만, 밤에는 이야기꾼이다. 그리고 이 두 정체성이 서로를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 내일 밤에도 나는 노트북을 켜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갈 것이다. 나만의 작은 세계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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