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도 울리는 알림: 잡담 채널이 전하는 무언의 압박

by 청아

일요일 오후 3시,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를 보던 중 휴대폰이 진동한다. 회사 슬랙의 '잡담' 채널에 대표님이 올린 글이다. 어떠한 메세지도 없이 공유하는 링크와 함께 올라온 글 아래, 곧바로 이모지 반응들이 달리기 시작한다. 때론 '이런 아티클이 있네요,'라는 메세지와 함께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잡담 채널이니까 부담 가질 필요 없다고, 그냥 무시하면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해보지만 왜일까. 가슴 한편이 묵직해진다.



처음엔 이해했다

입사 초기를 떠올려보며, 대표님이 근무시간 외, 주말에 올리는 메시지들을 보며 오히려 감탄했던 때가 있었다. "정말 열정적이시다, 저 열정이 이 회사를 만들었구나." 스타트업이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여느 기업과는 다른 문화, 다른 속도감. 그것이 스타트업의 매력이자 경쟁력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게다가 창업 멤버나 초기 멤버들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주말에도 활발하게 의견을 나누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들에게는 이미 형성된 관계가 있었고, 회사와 개인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듯했다. 어떤 이는 대표와 개인적으로도 친한 사이였고, 어떤 이는 회사의 지분은 없어도 심적으로 동업자에 가까웠다. 그들에게 주말 메시지는 부담이 아닌 일상적인 소통이었을 것이다.

나도 그 분위기에 동참하려 노력했다.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때로는 나도 주말에 흥미로운 아티클을 공유하기도 했다. 우리는 한 팀이고, 함께 성장하는 동료라고 믿었으니까.


서서히 스며든 피로감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그 열정이 부담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직 입사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입장에서는 회사 채널이 울리는 것이 서서히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일주일에 한두 번이던 주말 메시지가 어느새 토요일과 일요일 모두에 올라왔다. 아침, 점심, 저녁 가리지 않고. 잡담이라고는 하지만 업계 동향, 경쟁사 소식, 새로운 아이디어들. 무시하기엔 너무 업무적이고, 반응하기엔 내 주말과 퇴근 시간 후 나만의 시간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다른 직원들의 반응을 살피는 내 모습도 발견했다. 누가 먼저 이모지를 다는지, 누가 댓글을 남기는지. 그리고 내가 너무 늦게 반응하는 건 아닌지, 아니면 아예 반응하지 않으면 어떻게 비칠지. 이런 계산이 필요한 순간, 이것이 진정한 '잡담'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창업 멤버들과 나 같은 후기 합류자 사이의 온도차도 느껴졌다.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 나에게는 어색했고, 그들에게는 즐거운 소통이 나에게는 의무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기도 하였고, 이해심도 넒은 것 같이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열정이 부족한 직원으로 보일까 봐, 회사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봐.

사회 생활을 많이 했던 '나'이지만 여전히 새로운 조직에서 적응하기에 바쁜 건 어쩔 수 없나보다.


무언의 압박이 된 순간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다. 어느 월요일 아침 회의에서 대표님이 웃으며 말했다. "주말에 공유한 그 아티클 다들 보셨죠? 거기서 영감을 받아서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해 봤는데..."

나는 그 아티클을 봤다. 일요일 저녁, 가족과의 저녁 식사 중에 울린 알림을 확인하고, 화장실에서 급하게 읽었다. 보지 않으면 월요일에 대화를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때 깨달았다. 이것은 더 이상 자발적인 소통이 아니라는 것을. 잡담 채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업무의 연장선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주말이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을.


선의의 딜레마

스타트업 대표의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회사와 일이 삶의 중심이고, 그 열정이 회사를 여기까지 이끌어왔다. 주말에도 자연스럽게 업계 소식을 찾아보고, 떠오른 아이디어를 팀과 나누고 싶어 한다. '잡담' 채널을 선택한 것도 나름의 배려일 것이다. 업무 채널이 아닌 곳에서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자는 의도. 어쩌면 직원들과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의 표현일 수도 있다. 또 한편으로는 직원들도 대표처럼 같은 생각으로 생각하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도와 결과는 늘 일치하지 않는다. 특히 권력의 비대칭이 존재하는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보이지 않는 경계선

일과 삶의 경계는 물리적 공간만으로 나뉘지 않는다. 재택근무가 일상이 된 지금, 그 경계는 더욱 모호해졌다. 노트북을 닫고, 슬랙 알림을 끄는 것으로 퇴근을 선언하지만, 마음속 경계는 그리 명확하지 않다. 육아기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는 회사의 배려로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을 조정받았다. 하지만 퇴근을 해서도 일의 연장선으로 하기 일쑤이다. 출퇴근 시간으로 2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하고, 아이 육아시간 때문에 일 마감을 끝내지 못할때도 있기 때문에 늦은 시간 일을 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지만 때론 힘이 부치기도 한다. 또 슬랙은 핸드폰으로도 할 수 있는 매체이기에 노트북을 덮는다고 해결이 되지 않는다. 생각해 보라. 퇴근 시간, 주말에도 회사에서 카톡이 울린다고 생각하면 숨 막히지 않을까? 예전에 회사 생활을 할 때는 특별한 사항이 아니라면 퇴근시간 이후에는 절대로 회사 연락을 받지 않는 생활을 10년 넘게 한 사람이기에 현시점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고, 오히려 피로감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스타트업이라는 환경은 이 경계를 더욱 흐릿하게 만든다. "우리는 가족 같은 회사", "함께 성장하는 동료"라는 말들. 아름답고 따뜻한 가치지만, 때로는 이것이 개인의 시간과 공간을 침범하는 명분이 되기도 한다. 젊은 사람들이 모여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회사이기도 하고, 젊은 감각을 가진 회사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들이 있는 것 같다. 오히려 젊은 꼰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표는 아마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잡담 채널인데 뭐가 문제야? 싫으면 안 보면 되지." 맞는 말이다. 논리적으로는. 하지만 조직이라는 것이, 인간관계라는 것이 언제 논리만으로 작동했던가.


침묵하는 다수

가끔 궁금하다. 나만 이렇게 느끼는 걸까? 활발하게 반응하는 동료들은 정말 즐거워서 그러는 걸까, 아니면 나처럼 어쩔 수 없어서 그러는 걸까?

한 번은 친한 동료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주말에도 슬랙 확인해?" 그 동료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안 하고 싶은데... 안 할 수가 없더라고." 우리는 그 이상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했고, 동시에 이것이 공개적으로 논의될 수 없는 주제임을 알았으니까.


필요한 것은 공감과 인식

이 글을 쓰는 것은 대표를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시작점을 만들고 싶다. 대표의 열정과 헌신을 존중하면서도, 직원들의 휴식권 역시 소중하다는 것을.

개인 보다 회사를 우선으로 살았던 40 ~ 50대들인 우리가 더 잘 안다.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중요하다는 것을.

오히려 우리가 더 워라밸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우리 세대가 하나의 딜레마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처음엔 이해했고, 적응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나를 소진시키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일요일 밤마다 찾아오는 불안감. 월요일이 오는 것도 두려운데, 주말조차 온전히 쉴 수 없다는 것이 더 두렵다. 40대인 나도 그런데 회사의 젊은 직원들은 어떠하리.

리더십이란 단순히 비전을 제시하고 열정을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다. 구성원들의 보이지 않는 부담을 인식하고, 그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진정한 리더십이 아닐까.


작은 변화의 시작

완벽한 해결책은 없다. 하지만 작은 인식의 변화가 시작이 될 수 있다.

우리 회사는 출근 근무보다 재택근무를 하는 직원이 많기도 하다. 처음 회사를 설립할 때 환경상 그렇게 된 것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직원이 많아지고 있는 이 시점에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대표가 주말에 떠오른 생각들을 메모해 두었다가 월요일 아침에 공유한다면. 정말 급한 일이 아니라면 업무 시간을 존중한다면. 그리고 직원들이 주말에 응답하지 않아도 전혀 문제없다는 것을 명확히 한다면.

반대로 직원들도 대표의 열정을 이해하고, 건강한 경계 설정이 회사에 대한 불충이 아님을 함께 인식한다면.

일요일 저녁, 다시 휴대폰이 진동한다. 하지만 이번엔 예약 발송 메시지다. "월요일 아침에 확인하실 수 있도록 예약 발송합니다." 작은 문구지만, 그 안에 담긴 배려가 느껴진다. 누군가에게는 이것또한 스트레스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이 작은 배려가 필요해 보인다.

이 작은 문구 하나가 비로소 마음 편히 주말의 남은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건강한 일터의 모습이 아닐까.

처음의 이해와 공감이 어느새 부담과 압박으로 변해버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솔직한 대화와 상호 존중의 문화다. 스타트업의 열정을 잃지 않으면서도, 구성원 개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의 비결이 아닐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밤의 이야기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