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기억의 병

by 청아

[ 윤서율의 선택 이후 ]

윤서율이 하진과 대화를 나눈 지 사흘이 지났다.

하진은 매일 정원을 지키며 그녀의 소식을 궁금해했다. 그녀가 결국 어떤 선택을 했을까? 검은 꽃잎의 유혹을 뿌리쳤을까, 아니면...

그날 아침, 하진은 뉴스에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수원시 일대에서 원인 불명의 기억상실 환자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의료진들은 이례적인 현상이라며..."

화면에는 병원 응급실의 모습이 나왔다. 의사가 한 환자에게 질문하고 있었다.

"이름이 뭐죠?"

"모르겠어요."

"어디서 오셨나요?"

"모르겠어요."

하진의 가슴이 철렁했다. 윤서율의 얼굴이 떠올랐다. 혹시 그녀도...

그는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직접 확인해야 했다. 검은 벚꽃의 영향이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로 확산되고 있는 것 같았다.


[ 기억 유령의 단계별 증상 ]

하진은 며칠간의 관찰을 통해 '기억의 병'이 단계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마치 해리성 기억상실의 증상과 비슷해 보인다.

1단계: 꽃잎의 속삭임

검은 꽃잎에 노출된 후 특정 아픈 기억만 흐릿해짐

처음엔 안도감을 느끼며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표현

하지만 그 기억과 연결된 다른 추억들도 함께 희미해짐


2단계: 색깔의 소실

감정의 스펙트럼이 점차 단조로워짐

강렬한 기쁨이나 깊은 슬픔을 느끼지 못하게 됨

모든 것이 "괜찮다", "상관없다"는 반응으로 수렴


3단계: 경계의 흐림

자신과 타인의 경험을 구분하기 어려워함

"내가 경험한 일인지, 들은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거울을 봐도 낯선 사람 같다고 느낌


4단계: 공명의 그릇

자아는 사라지고 외부 자극에만 반응하는 상태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려는 경향

마치 빈 그릇이 울림만 전달하는 것처럼


하진은 수첩에 이 내용들을 세세히 기록했다. 패턴을 이해해야 대응책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윤서율과의 재회 ]

병원에서 나온 하진은 우연히 거리에서 윤서율을 만났다. 아니, 만났다기보다는 그녀가 하진 앞에 나타났다.

"하진 씨."

그녀는 여전히 단정한 옷차림이었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말투가 더 차분해졌고, 표정이 더 평온해 보였다.

"서율 씨... 어떻게 지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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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를 키우며 매일의 일상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은 언제나 새롭고, 그 안에서 작은 통찰을 발견하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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