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기술과 사람의 경계

by 청아
ChatGPT Image 2025년 12월 10일 오후 10_46_22.png AI 이미지 생성

목요일 오후 3시 47분.


“GPT-5 나왔대요.”


슬랙 #general 채널이 잠시 폭발했다.
이모지들이 연달아 올라오다가, 5분 후엔 기묘하게 조용해졌다. 모두가 같은 페이지를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자의 화면에서, 각자의 속도로.


금요일 스탠드업.

“우리 모델도 업그레이드해야겠네요.” CTO가 말했다.
백엔드 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주에 겨우 v3 배포 끝냈는데…”
세일즈 팀도 걱정을 더했다.
“고객사엔 뭐라고 설명하죠? 아직 v2도 어려워하시고, 이해하는데 오래 걸리는데요.”

기술은 3일 만에 진화했지만, 사람은 3주가 걸려도 따라잡기 어려웠다. 빨라도 너무 빨라지고 있다.


다음 주 월요일.

주니어 개발자 K가 새벽 2시에 슬랙 메시지를 남겼다.

“AI가 제가 짠 코드보다 깔끔한 걸 3초 만에 만들어내네요. 제가 여기서 뭘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아침에 CTO가 답했다.

“AI는 ‘어떻게’는 알지만, ‘왜’는 모르지. 사람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그 ‘왜’ 때문이에요.” 하지만 K의 상태 메시지는 여전히 ‘�’이었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바이브코딩의 기술도 좋아지고 있었다.


수요일, 제품 리뷰 미팅.

디자이너 L이 프로토타입을 공유했다. “AI가 생성한 초안을 좀 다듬었습니다.”

PM이 물었다. “원본이 어떻게 생겼었죠?”

L이 조용히 AI 버전을 보여주었다. 솔직히, 차이는 크지 않았다. 아니, AI 버전이 더 나아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잠시 정적.

“인간의 터치를 더했다고 생각해 주세요.” L이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 터치가 뭔데요?” 인턴이 순진하게 물었다.

또 정적.

CPO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AI는 평균을 만들어내죠. L은 그 평균 위에 ‘사용자를 향한 의미’를 더한 거예요.”

모두 고개를 끄덕였지만 L의 표정은 복잡한 결을 숨기지 못했다.


금요일 저녁, 회식 자리.

“솔직히 무섭기도 하고 걱정도 돼요.” 마케터 M이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ChatGPT가 쓴 카피가 제 것보다 전환율이 높았어요.”

QA 엔지니어가 맞장구쳤다.

“AI는 버그를 잘 잡아요. 근데 왜 그게 ‘문제’인지는 설명 못 해요. 그냥 패턴이죠. 할루시네이션도 무시하지 못해요.”

데이터 분석가가 조용히 덧붙였다.
“AI는 상관관계는 금방 찾는데 인과관계는 우리가 해석해줘야 하잖아요.”


다음 주 전사 타운홀.

CEO가 물었다. “AI 시대에 우리의 역할은 뭘까요?”

긴 토론이 이어졌다. 그리고 누군가 말했다.

“AI는 답을 주지만, 우리는 질문을 만들어요.”
“AI는 패턴을 찾지만, 우리는 의미를 부여해요.”
“AI는 효율을 추구하지만, 우리는 가치를 정의해요.”


듣기 좋은 말들이었다.

하지만 퇴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들은 대화는 조금 더 솔직했다.

“그래도 불안한 건 똑같아.”
“응. 매일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것도.”

어느 늦은 밤, 사무실에 불이 거의 꺼진 시간. 시니어 개발자 한 명이 모니터를 보며 혼잣말을 했다.

“예전엔 우리가 기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는데… 이젠 기계가 우릴 이해하려고 하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기술과 사람의 경계는 선처럼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틈’처럼 벌어져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그 틈에서 우리는 매일 협상하고, 적응하고, 때로는 조용히 저항하며 살아간다.

AI가 만든 초안 위에 인간의 수정을 더하고, 기계의 판단에 인간의 직관을 얹고, 알고리즘의 효율에 인간의 비효율을 채워 넣으며.

완벽하지 않은 공존. 그것이 내가 보고 기록하는 AI 회사의 현실이었다.

월, 수 연재
이전 03화3화. C의 나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