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내 편이 될 수 없는 존재

여자들의 은밀한 관계, 동서 지간

by 청아



결혼 생활 중 난감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고부간의 관계, 동서지간의 관계 등에서 나타납니다.

식구들이 모이면 남자들은 몰라도 여자들은 어딘가 모르게 서로를 탐색하게 되죠. 기분이 어떤지 서로의 부부관계가 원만한지, 시댁 식구들과의 분위기는 어떤지를 파악하게 됩니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왜 그럴까 생각을 해보니 며느리의 입장에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나름 정리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누구는 일을 하고 있으니 편의를 봐주자라던가 누구는 큰 며느리 이니깐 해야 한다거나 등의 알게 모르게 조금씩 불만들이 생기게 됩니다. 저는 시댁 식구들과 큰 트러블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10년의 연애를 통해서 결혼 전부터 가족들과 스스럼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기분 상했던 일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작은 트러블들은 누구나 다 겪는 일들인 것 같아 특별히 마음에 담아두지 않습니다. 남편의 형인 아주버님이 본의 아니게 재혼을 하셔서 두 명의 동서인 형님들과의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형님과의 에피소드는 제가 연애를 오래 해서 시댁 식구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것이 형님에게는 같이 어울릴 수 없는 벽이 생긴다고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막내며느리여서 무엇이든 못 미더워하는 부분들도 많았습니다. 비록 살림에 소질이 없었던 것도 있었지만 말입니다. 시어머니는 늘 큰며느리인 형님에게 무엇이든 이야기를 하였고, 저는 그저 서포트하는 개념으로 서 있기 일쑤였습니다. 이렇듯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늘 무언가 한 점의 불만과 불평들이 생기게 마련인가 봅니다.

지금은 각자 알아서 해결을 하지만 5년 전까지 매년 하던 김장하는 날이었습니다. 시어머니 댁에서 김장을 한 후 딸, 고모님, 며느리들이 나누어 가져 가기 때문에 명절 못지않게 큰 행사 중 하나입니다. 형님이 참석을 하던 아주버님이 참석을 하던 한 명은 참석 후에 가져갔었는데 그 날은 형님네 식구들이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일이 있어 참석을 하지 않을 수도 있죠. 김장하는 내내 시어머니는 김치를 아주버님 댁에 가져다줘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제발 우리에게 가져다줘라’고 하지 말라고. 그러나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남편과 나 둘만 있어 김치가 많이 필요하지 않지만 일을 하고 가져가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왜 우리가 남의 집 김치까지 배달을 해야 하는지 기분이 좋을 리가 없죠.

배달까지는 못하니 택배로 보내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으시는 시어머님 때문에 결국엔 김치를 싣고 돌아왔지만 당장 김치를 받을 수 없다는 통보에 우리 집 베란다에서 일주일이 지나서야 전달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김치가 잔뜩 담긴 드럼통을 볼 때마다 화가 치밀어올라 화병이 생기려고 하는데 제 감정을 누르느라 고생을 엄청 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날은 정말 화가 많이 났었고, 다시는 형님과 가깝게 지내는 것을 거부하게 되었던 사건이었습니다.

명절이나 시댁 식구들의 집안 행사가 있어 만나면 형님은 늘 나에게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이야기를 늘 듣는 쪽이었지만 한 편으로는 듣고 싶지 않았던 적도 많았습니다. 나보다 먼저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생긴 생각들이겠지만 직접적으로 겪지 않았던 사람에게 누구를 헐뜯는 말들은 그 사람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레 ‘나는 무슨 이야기이든 하지 않겠어.’ 다짐하게 만들기도 하죠. 드라마에서처럼 내가 가볍게 이야기한 것들을 시댁 식구들이 알아서 불화가 생기면 안 되지 않나. 늘 내가 주도적인 행동을 보이다 동서의 눈치를 보게 되고 그녀가 행동하는 거에 따라 나의 행동도 달라지기도 합니다.

내가 하고 싶지 않으면 남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조금 더 가까운 사이로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순전히 이것 또한 저의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두 번째 형님과의 에피소드는 제가 임신하기 전의 이야기도 있지만 크게 기억이 없어서 임신했을 때 서운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음의 거리를 두기로 최종 결심한 날이기도 합니다.

2019년 설 명절의 일이었습니다. 작년 추석부터 시댁 방문을 할 수 없는 사정이 생겼습니다. 바로 쌍둥이 임신으로 병원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2시간 이상 되는 곳으로 가지 말라는 권유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임신 초기이기도 했고, 입덧이 워낙 심했던 터라 자체적으로 움직일 수 없었고, 안정적이라는 임신 중기에는 더욱 짧게 1시간으로 잡아주셨습니다. 이유인즉슨 마흔에 임신을 했고, 고령 산모로 분류가 된 데다가 쌍둥이 임신이라는 것이 덧붙여져서 더욱 조심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담당 선생님께서 너무 조심을 시키니 답답하기 이를 때 없었지만 2년 전 유산 경험이 있어 그저 그 말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때아닌 모든 일에 예외 규정처럼 모두에게 이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더욱 몸이 무거워지고 혹시 모를 조기수축이나 진통을 겪을 시기이기도 해서 설 명절에도 시댁을 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어른들께 미리 전화를 드리고 양해를 구했고, 동서지간의 형님에게도 양해를 구했습니다.


2019년 2월 4일 설 전날.

시댁은 1년 중 제사가 1번 있는 집입니다. 작년에 시 할머님이 돌아가셔서 하나가 더 늘었지만, 평소에 지내는 제사는 며느리인 우리 모두 참석하지 못합니다. 시댁이 부산이기 때문에 평일에 있는 제사에 참석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제사는 명절에 지내는 차례뿐이죠. 이것 하나만 있다고 해서 편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늘 겪어오지 않나요, 명절의 스트레스를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혼자 어른들을 상대하며 음식 장만에 손을 보태고 있을 형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어 참석하지 못하는 것에 거듭 미안하다고 전했습니다.


2019년 2월 5일 설날 당일.

“형님, 제사 지내고 어른들 챙기고 하시느라 많이 힘드셨죠. 제가 가지 못해서 죄송하고, 다음에 같이 얼굴 봐요.”

결혼 10년 동안 챙겼던 것을 이번 한번 챙기지 않았을 뿐인데 왜 자꾸 사과를 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짜증이 났지만 그렇게라도 달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 이번에 어쩔 수 없이 못 온 건데 뭘. 그래도 혼자 어른들 챙기고 한다고 힘들긴 했어.”

“아~~ 네~~”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뭐가 그리 자신은 당당하고 난 비굴해져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혼자 감당한 것은 맞기에 그 힘듦에 동조를 했습니다. 이렇게 또다시 마음의 거리감을 느꼈습니다.


처음에 형님을 만났을 때 “우리 같은 며느리 입장이니 같은 편으로 잘 지내보자” 했었습니다. 동서지간이 잘 지내면 누구보다 마음 든든한 내편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건 저만의 바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댁 가족 모임을 거듭하면서 식구들에게 말하는 것과 나에게 말하는 것이 다름을 알게 되고부터는 조금씩 혼자 거리감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며느리는 결코 가족이 될 수 없다는 말도 있지 않나요. 아무래도 결혼 후 가족이 되었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인데 온전히 서로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죠. 그런 결혼 생활 중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며느리끼리 친해지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말과 행동이 바뀌는 형님을 보고 ‘아~ 절대 같은 편이 될 수 없구나. 차라리 적당한 선에서 대하는 것이 맞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점점 행동하는 모습에 실망도 했고,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동서지간은 가깝고도 멀고, 내편인 듯 하지만 결코 내 편이 될 수 없는 관계인 것 같습니다.


또 한 번 씁쓸한 마음을 쓸어내렸던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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