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언니의 사회 초년생 시절

누구나 미숙했던 시간들이 있다

by 청아

언제나 처음이 있다. 이제 막 태어나서 세상의 모든 것들이 신기한 어린아이부터 어른이지만 처음 접하는 것들은 낯설고, 새롭다. 어떨 땐 설레기도 하다.


나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다. 공부는 그렇게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은 중간 정도의 성적이었던 아이였다.

실업계 고등학교는 3학년이 되면 대학 진학을 하거나 취업을 하거나 선택을 하게 된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1학년 때부터 대학 진학을 위한 과정이지만 실업계는 그렇지 않다. 1~2학년 때는 취업 목적인 수업들이 진행이 되고, 3학년이 되면 진학이냐 취업이냐로 나뉘며, 취업을 선택한 아이들은 더 이상 학교 수업이 중요하지 않게 된다. 오직 취업을 위하여 각종 자격증을 따는데 온 힘을 다해야 하고, 설령 수업시간에 졸아도 크게 터치를 하지 않는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의 학창 시절에는 그랬다.


고등학생이 취업 실습으로 나가게 되는 곳은 은행, 대기업 생산 라인, 중소기업 등이 있다.

내가 처음 취업 실습으로 나간 곳은 현대자동차 협력업체인 우량 중소기업이었다. 실습을 잘 마치고, 정식 직원이 되었다. 회사의 동기가 3명 정도 있었다. 제일 어린 직원은 19세인 우리들이었다.


비록 같은 부서는 아니었지만 아침마다 여직원들만의 회의가 짧게 진행이 된다. 커피는 어떻게 타야 한다. 임원들마다 음료 스타일이 다르니 잘 알아둬야 하고, 아침마다 직원들 책상을 닦아야 하고, 내•외부 전화는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등의 고려 사항들이 전달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의 첫 직장 생활이 영화 ‘삼진 그룹 영어 토익반’의 여직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회사에서 제일 어린 직원이지만 ‘일 잘한다’는 말을 듣기 위해 노력했다. 누구보다 일찍 출근했고, 늦게 퇴근을 했다. 사무직이고, 나는 생산라인 파트 부서인지라 매월 초일, 매월 말일에는 생산량이 어떻게 될지 예상하고, 정리하는 일이기에 다른 부서보다 늦게 퇴근하는 날이 많았다. 한 달, 두 달이 지날수록 나의 몸무게가 빠지기 시작했다. 결혼 전까지는 50kg를 넘겨본 적이 거의 없는 몸이었다. 남들이 볼 때는 깡 마른 여자 아이였을 거다. 처음 접한 사회는 만만하지 않았다. 때론 어린 여자 소녀가 감당하기 힘든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어엿한 직장인이기에 참아야 했다. 회사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대하기도 했다. 처음엔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에 어른이 된 것만 같았다. 그게 나의 착각이었다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아서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회사를 입사하고, 고등학교 졸업도 했다. 한편으로 학생의 신분에서 일반인, 직장인 신분이 되었다. 회사가 집과는 거리가 있어 통근 버스로 출근했다. 집 근처에서 버스가 정차하는 시간은 6시 30분이었다.

매일 새벽 6시 일어나 부랴부랴 통근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면 7시 30분에서 8시에 회사에 도착한다. 업무 준비를 하고 하루 일과를 열심히 보내고, 잦은 야근으로 피곤이 쌓여갔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살이 안 빠지려야 안 빠질 수 없었다. 하루는 엄마와 목욕탕을 가서 등을 밀어주시는데 엄마는 갈비뼈가 드러나 보이는 등을 보시고, “희야, 힘들면 회사 그만둬도 돼.” 말씀하셨다. 그때의 우리 집 사정은 넉넉하지 않았고, 두 명의 동생들은 고등학생, 중학생이었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아니야, 내가 일을 해야 그나마 생활자금이 부족하지 않지. 아직 애들도 학생이잖아. 조금 더 버텨볼게. 진짜 너무 힘들면 그때 이야기할게.”

나름 힘을 내며 회사를 다녔고, 상사에게도 인정을 조금씩 받았다. 그러다 어느 날 옆 부서 부장님이 자신의 일을 도와달라고 하셨다. 일을 도왔지만 좋은 말을 듣기는커녕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혼을 내셨다. 자주는 아니지만 한 번씩 그러셨길래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부장님의 괴롭힘은 늘어갔다. 결국엔 일이 터지고 말았다. 회사의 공고문을 게시판에 부착하라고 했다. 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부장님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내가 공고문 부착하라고 했잖아.” 말을 하셔서 게시판에 부착했다고 말했더니 내가 잘못 부착을 했다는 거다. 자신이 시킨 것은 게시판이 아니라 직원 식당 게시판에 부착을 하라고 했다는 거였다. 다시 부착을 하겠다고 했다. 이 날이 계기였는지 아니면 회사 임원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들은 것인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마다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며 괴롭혔다. 참다 참다 나도 폭발했다. “부장님, 기분이 좋지 않다고 저에게 화풀이하지 마세요. 그리고 같은 부서 부하직원도 아니잖아요.”

이제 막 고등학생 꼬리표를 뗀 딸 같은 아이가 대를 들었으니 더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부당한 일들을 계속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부장님은 “나이도 어린 게 어디서 대들어. 내가 시키면 해야지. 고작 고등학교밖에 졸업하지 않았으면서 네가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어.” 라며 소리를 치셨다. 나는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서럽기도 했고, 사무실 직원 모두가 보는 앞이라서 창피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수치스럽다는 것을 느꼈던 때다.

다음 날 사직서가 담긴 결재 서류를 들고 소속 부서 차장님께 갔다. 그분은 처음부터 딸처럼 대해주셨다. 실제로 친딸의 나이가 나와 비슷하기도 했기에 더 그러셨을 거라 생각한다. 조금 더 참고 다녀보라고 붙잡으셨지만 나의 생각을 관철시키고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입사한 지 6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다.


나의 첫 직장, 첫 사회생활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 부장님 덕분에 나는 다시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대학생이었던 남자 친구의 도움도 받았다. 그때 처음으로 한국은 학력이 중요하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대졸자는 아니었지만 전문대 졸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고등학교에서 상업과였기에 전문대도 회계과를 가게 되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대학 생활은 아니었지만 재밌게 다녔던 것 같다. 졸업 후 다니게 된 두 번째 직장은 회계사무실이었다. 학교 선배들의 이야기와 동기들이 먼저 들어가서 겪었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별로 가고 싶은 곳은 아니었지만 다른 어느 곳보다 일을 배워두면 이직을 할 때도 좋고, 일반 회사들보다 오랫동안 다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선택하게 된 직장이었다.

회계사무실은 특성상 90% 이상이 여직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에 어느 곳보다 텃세가 심한 곳이기도 하다. 이쪽 업계도 상당히 좁다. 소문도 빨리 퍼지는 현상도 있다. 좋은 소문, 나쁜 소문. 만약 이직을 하게 되면 직장 상사나 대표들이 전 직장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 능력은 어떤지 서로 공유할 정도이니 말 다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쪽으로 계속 갈 사람이라면 인맥 관리와 자신의 인성 관리, 업무 능력 관리 등을 잘해두는 것이 좋다.


나에겐 두 번째 직장이지만 새로운 업무를 하는 곳이니 초년생이라는 꼬리표를 떼려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입사한 회사에 가서 보니 사무실 선배, 언니들과 상당히 나이차가 있었다. 거의 이모뻘 정도 되거나 심지어 엄마뻘 되는 사람도 있었다. 사무실 직원들 얼굴을 본 후 ‘이곳도 쉽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회계사무실은 독특한 형태의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회사를 대표하는 회계사, 세무사가 있고, 사무장이 그 밑으로 있고, 나머지 직원들은 여직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은 사무장이 회계사, 세무사에게 고용이 되어있는 형태의 사람들이 많지만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사무장이 회사의 대표 격이었고, 회계사, 세무사가 고용이 되어있는 것 같은 형태였다. 외부에서 볼 때는 그렇지 않다. 사업자등록증과 모든 것들이 회계사, 세무사 명의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사무장들은 영업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새로운 업체를 늘리는데 최적화되어있는 사람들이다. 반면 회계사, 세무사들은 각종 회계, 상업에 관련한 법적 능력이 있고 사무적인 사람들이라서 안에서 업무를 보는 것에 최적화된 사람들이 많다.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보완해주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러다 서로의 생각이 어긋나는 경우에는 사무장들이 거래처와 직원들까지도 같이 사무실을 나오게 되는 경우들도 종종 있었다. 내가 들어갔던 사무실도 그런 형태였다. 거래처와 직원들 급여까지 모두 사무장이 관리를 하고, 국세청 같은 관공서 등의 법적인 일들은 회계사가 전담을 했다. 또한 직원들 교육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보통 한 사무실에 적어도 2팀 정도가 있다. 각 팀의 사무장이 있고, 그 팀의 회계사가 있기도 하다.

내가 입사한 사무실은 한 회계사에 3명의 사무장이 있고, 팀이 나누어져 있었다. 그중 젊은 사무장의 팀에 소속이 되었다. 이 팀은 사무장, 경력 직원 1명, 신입사원 1명(바로 나)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처음에 맡은 일은 없었다. 학교에서 회계 프로그램 사용법을 배웠고, 회계법 등을 알고 있다고 해도 실전에서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몰랐다. 회계 장부를 정리하고 입력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너무나도 다른 회계일이 낯설었다. 거래처에서 기초적인 질문을 해도 제대로 대답을 못해 선배 언니에게 전화를 넘기기 일쑤였다. 아마 그때 신입 사원인 나 때문에서 귀찮은 일을 많을 했을 것이다. 한 달 정도는 선배 언니 일을 도와주거나 사무실 주변 정리, 손님 접대(음료), 전화받기, 사무실 선배들 및 상사들 커피 심부름을 했었다. 처음엔 일을 할 줄 모르니 자잘한 일이라도 하는 게 속이 편했는데 입사한 지 보름 정도 지나니 '내가 이런 허드렛일을 하려고 입사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들이 드는 순간 불평이 많은 표정 장착을 하며 투덜이 스머프처럼 행동하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행동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때는 부당하다고 느꼈던 일들이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면 선배들이 나를 대했던 태도들이 왜 그랬는지 이해는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지금의 꼰대 언니도 사회 초년생 시절이 있었고, 모든 것이 미숙했던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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