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부터 무시당했던 시간들이 쌓여

실력으로 나를 증명해라

by 청아

지금은 어디를 가든 OO 씨, OO주임•대리(직책)등으로 불린다. 90년대~2000년 초반에는 성으로 종종 불리곤 했다. O양, 특히 나이가 많은 거래처 사장님들이 주로 그렇게 불렀다. 나는 성이 심 씨여서 심양으로 불렸다. 어린 내가 듣기에는 이상하고 거북스러웠다. ‘무슨 70~80년대도 아니고 심양이 뭐야’라고 생각했다. 사장님들은 최대한 예의를 갖춘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속에 무시하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보통 회계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직원들을 그저 영수증 정리나 하는 경리 직원이라고 생각하며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지금은 전문직종으로 대우를 받지만 그때 그 시절에는 그랬다.


기분이 종종 상했지만 실력이 변변치 못했던 막내 시절에는 참아내야 했다. 일을 빨리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계사님께 다시 회계 수업을 종종 받으며 배웠다. 보통 회계사무실 업무를 모두 파악을 하려면 최소 1년이 걸린다. 매월, 분기별 마다 부가가치세 신고, 급여 신고가 있고, 고용 보험에 관련한 업무도 같이 본다. 연말이 되면 연말정산신고, 장부를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는 법인세, 소득세 신고가 있으며, 중간에 양도소득세, 부동산업 신고등 우리가 내는 세금에 관련한 업무들이다. 1년이 지나야 신고가 언제 있고, 자신의 업무를 어떻게 배분을 잘해서 해나가야 하는지 파악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실력을 쌓기에 시간이 걸리는 업종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나는 막내로 팀에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수 선배 언니가 퇴사를 하는 바람에 일을 가르쳐줄 사람이 사무장, 회계사 밖에 없어서 더 타이트하게 배웠다. 혼이 많이 나면서 배운 것도 있다. 보통 3년 차 정도 되어야 일을 제대로 배웠다는 소리를 듣는데 나는 1년 만에 듣게 되었다. 선배들에게 배우면 편법 등도 있곤 한데, 원칙주의를 강조하는 회계사님 덕분에 FM(원리 원칙)대로 업무를 익혔다. 그래서인지 일을 마무리하는 속도는 조금 느렸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꼼꼼하게 일을 했다. 나중엔 그 부분이 인정되어 거래처 사장님이 담당자를 나로 지정을 하시곤 했다. 수임하고 있는 거래처 대표가 회계 담당자를 콕 집었기에 회사에서도 인정을 조금씩 받게 되었다.


우리 팀에 선배 언니도 있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모두 퇴사를 하게 되었다. 아주 중요한 장부는 사무장이 맡았고, 나머지는 내가 맡았다. 그리고 직책도 대리로 진급을 하게 되었다. 후배가 생긴 후 나는 팀에 실질적인 팀장이 되었다. 그때 나이 25살이었다.


25살이 되고 거래처가 많이 늘어나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직원을 더 뽑기로 했다. 웬만하면 경력자를 원했다. 초보자를 고용하면 일을 가르쳐야 하는 부담이 있기에 꺼려했다. 인사권자인 사무장에게도 의사 전달을 했다. 하지만 좀처럼 직원이 구해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초보자인 신입사원을 구하기로 했다.

입사한 직원은 이제 갓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였다. 바로 세무회계업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정말 초보자이자 사회초년생이었다. 그랬기에 함부로 일을 맡길 수 없어 내가 사수가 되어 처음부터 일을 가르쳤고, 회계 및 세무 공부도 같이 가르쳤다. 누군가를 가르쳐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에게서부터 나가는 모든 것들을 다시 점검을 해야 한다. 내가 정확히 알고 있어야 다른 이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기에 아는 것도 다시 공부하여 가르치곤 했다. 후배는 생각보다 잘 따라와 주었고, 경력도 쌓였다. 그렇게 3년이 지나 한 명의 후배를 잘 길러냈고, 두 번째 신입사원이 들어오게 되었다. 28살에 팀에 제일 나이 많은 언니이며, 왕고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중간 관리자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사무장은 사무실 직원 일에는 전적으로 나에게 일임을 하였고, 나름 잘 서로 간의 의견들을 수렴하며 지냈다.

일을 많이 할수록 능력은 쌓이게 마련이다. 한번 후배 양성을 잘해서인지 새로운 직원을 신입으로 채용하는 것이 불만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와 함께 일을 하면서 큰 트러블 없이 꽤 오랜 시간 같이 한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기도 하다. 반면 상사들이 볼 때는 직원들의 업무 능력과 행동들이 마음에 안 들기도 할 것이다. 그것을 조율하는 일도 중간 관리자가 해야 한다. 그때 나는 종종 사무장에게서 "애들 좀 잡아. 일 속도도 느리고 게으르잖아. 그리고 아침에 책상은 왜 안 닦아?"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면 나는 "애들이 무슨 소예요. 잡기는 뭘 잡아.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말을 하면 되죠. 그리고 애들이 일하러 왔지, 사무장님 책상 닦아주려고 출근하는 거 아니잖아요. 웬만하면 우리 각자의 책상은 각자 닦아요. 정 마음에 안 들면 제가 닦아드릴게요."라고 투덜 되었다. 후배들에게는 사무장과 대화했던 내용을 다 전달하지 않고, 개선해야 할 부분들만 전달했다. 그때의 나는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거침없이 이야기했고, 혼자 감당하기도 했다.

거래처에서는 걸핏하면 어린 여자라고 무시를 하곤 했지만 실력으로 나를 증명했다. 처음엔 심양~~에서 대리님으로 깍듯하게 대하게 되었다. 여전히 자신들이 기분이 나쁘거나 하면 순간순간 무시를 하곤 하지만 함부로 대하는 태도는 점차 없어졌다. 처음엔 아무 말도 못 했던 내가 어느새 당당히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그 업종에서 15년이라는 시간을 견뎌내었다. 몇 번의 이직이 있었고, 종종 힘든 순간들이 있었지만 나름 회사 생활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호칭부터 무시만 당했던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새 단단한 내가 되었다. 부당하다고만 생각했다면 그렇게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하는 일에 확신이 있다면 잘 버텨내는 것도 나를 성숙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재료 중 하나임을 명심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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