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은 성의가 없어.

선배인 당신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 주세요

by 청아

본격적인 사회생활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인 것 같다. 회계과를 다닐 때는 사실 약간의 회의감도 있었다. '어차피 회사에 들어가서 경리 파트에 있는 거잖아.'라며 생각하기도 했었다. 학교 교수님들은 이제는 회계파트에 있는 직원을 예전처럼 무시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고등학교 졸업 후 다녔던 회사에서는 그렇지 않았는데 그 몇 년 사이에 많이 달라져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하는 회계사무실에 입사를 했다. 교수님들의 말씀과는 달랐다. 여전히 무시하는 태도들은 바뀌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그만둘 수도 없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었던 우리들은 안 그래도 취업할 곳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입사한 회사마저 그만둔다면 인내심이 있네, 없네 운운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일단은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아보자 생각했다. 사무실에서는 거의 대부분이 여직원들이었기에 모두가 잘 이해해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사무실 선배 언니들은 "우리는 다 같은 직원이야, 그냥 외부적으로 직책이 있는 것이지 누구는 중요한 일을 하고 누구는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야. 그러니 언니처럼 생각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곳은 어느 곳보다 텃세가 심했다. 그리고 상하관계를 따지기도 했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선배가 있었다.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없기에 기다렸다. 사무장은 선배 언니가 알려줄 거라고 했다. 그래서 기다렸다. 그런데 일을 알려주지 않았다. 하루 이틀이 지나가고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이 곤혹스러웠다. 아침 9시에 출근하여 오후 6시에 퇴근인데 책상에 앉아 언제 일을 알려주는지 모른 채 우두커니 앉아있는 것이 고문이었다. 선배 언니에게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물어봤지만 기다리라는 말뿐이었다.

"내가 적당한 일을 정하지 못했어. 지금은 내가 바쁘니깐 그냥 사무실 분위기 파악한다고 생각하고 기다려. 정리되면 그때 알려줄게. 그냥 편하게 있으면 돼. 정 안되면 회계책이나 세법 책 보거나 거래처 장부 하나 줄게. 공부한다고 생각하고 보고 있어, "

기다리다 몸서리가 나서 나의 자리를 중심으로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일을 주지 않으니 책상도 정리하고, 의미 없이 괜히 닦기도 했다. 아침에 사무장, 선배 언니들의 커피를 타서 나눠주고, 점심 먹고 커피 타서 나눠주고, 가끔 손님이 오면 커피 타서 주는 일들을 했다. 작은 사무실이었기에 청소도 막내들이 주로 했었는데 그것 포함이었다. 무슨 청소부로 입사를 한 것도 아닌데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꼬박 보냈다. 일주일 후에 작은 일부터 주어지게 되었다. 장부 정리를 위해 거래처에서 받아온 영수증들을 정리하고, 입력도 했다. 신고 기간이 되었을 때는 모르는 것이 많아 선배의 도움이 필요했다. 물어봤지만 선배도 자신의 일로 바빠 나를 돌아봐줄 여력이 없었다. 일을 해결하기 위해 바쁜 선배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거나 팀의 사무장에게 묻거나 그것조차 안되면 옆팀의 선배에게까지 가서 묻곤 했다.

작은 일에도 맞는 답인지 의문이 들기 때문에 물어봤던 것을 또 물어보기도 여러 번 했었다. 어떤 선배는 짜증을 내기도 했었다. 본인이 처리해야 할 일이 많으니 그럴 수도 있다. 그때는 섭섭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맡은 일을 기간 안에 처리를 해야 하는데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러면 선배에게 도움을 받아야 했다. 창피했던 일이었지만 그런 때가 있었다.

어떤 일은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혼자 끙끙대기보다 물어봐야 한다.

가끔 물음에 대답을 듣기는커녕 그냥 내일과 비슷한 서류를 던져주며, “이거랑 비슷하니깐 보고 만들어봐.” 외면을 당할 때도 있다. 선배가 자기에게 물어보지 말라고 서류를 던져줬으니 그것을 토대로 일을 처리한다. 최종 결정은 결재가 되어야 끝이 난다. 외부로 나가기 전에 그래도 걸러주기는 하니 다행인 것이다. 운이 좋아 한번에 넘어갈 때도 있다. 하지만 보통 2~3번은 반려가 된다.

선배는 “원래 그렇게 배우는 거야. 나 때는 더했어.”라며 말했다. 위로인 거야? 빈정대는 거야?

자신들이 일을 배울 때 누가 가르쳐주지 않고 스스로 깨우쳤다고 자랑을 하는 거야?

나도 똑같은 대우를 받아 보라는 거야?

그런 선배들을 보며 나는 나중에 저런 선배가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나는 어느새 배테랑이 되어 있었다. 세무 회계 쪽이 정권이 바뀌거나 선거 때가 되거나 하면 그때 이슈 되었던 것들이 법으로 만들어져 적용을 시켜야 할 때가 많다. 그래서 경력자도 꾸준히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야 후배에게도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선배가 될 수 있다.


결혼 후 새로운 도시, 새로운 회사에 적응을 해야 했다. 경력자도 새롭게 적응해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니 내가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아니 여기 사무실이 평균 연령이 낮았다. 아마도 급여 문제 때문에 경력 많은 직원은 별로 뽑지 않았을게 뻔하다. 일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내가 오기 전 직원이 해놓은 일은 어이가 없었지만 표면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니 잘 버무려야 했다. 그렇게 일도 파악했고, 직원들은 어떤 성향 인지도 파악했다. 알고 보니 주민등록상은 나보다 1살 많았지만 실제로는 같은 나이인 직원이 있었다. 이 직원에게 다른 직원들이 어떤지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사무실 분위기는 어때요? 직원들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뭐 괜찮아요. 나쁘지는 않아요.”

뭔가 약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지만 큰 문제는 안될 것 같아 넘어갔다. 내가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초보자 직원이 들어왔다. 내가 그 후배의 사수는 아니었지만 왠지 신경이 쓰였다. 그 직원도 이틀 정도 하는 일 없이 보냈던 것 같다. 어느 날 그 직원이 조용히 내게 왔다.

"저기, 바쁘세요?"

"아니, 괜찮아요. 무슨 일이에요?"

"저....제가 할 일이 없는데요.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 그래요. 내가 대신 확인해서 알려줄게요."

나도 사무실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몰랐지만 최대한 확인을 해서 알려주었다. 그리고 잘 지내는 것 같았다. 종종 모르는 것이 있으면 내게 물어보기도 했기에 별일 없는 줄 알았다.

사무실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나와 한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나이가 비슷했고,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그 친구는 이 사무실에서 일한 지 꽤 되었다. 서로의 고충을 들어주기도 했다. 하루는 초보 직원의 낯빛이 그리 좋지 않아 보여 직접 물어보기는 실례인 것 같아 고참 친구에게 물어보게 되었다.

"OO씨, 요즘 얼굴빛이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 뭐 아는 거 있어?"

"아니, 말을 안 해서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일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있어."

"어떤 점이?"

"일하는데 너무 성의가 없어. 시키는 일만 해. 모르는 게 있어도 물어보지도 않아. 너무 수동적이야.

요즘 애들은 다 그런가?"

"그럴 리가, 먼저 물어는 봤어. 맡은 일에 대해서 어떤 점이 어려운지 말이야."

"야, 그걸 내가 왜 물어봐. 의지가 있으면 지가 물어봐야지. 우리 때는 안 그랬어. 그렇지 않니? 배우려는 마음도 없나 봐."

친구와의 대화에서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모르니 섣부르게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사무실 출근 후 초보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OO씨, 요즘 뭐가 제일 힘들어?"

"저기......일도 잘 모르겠고, 이 일이 적성에 맞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럼, 이쪽 일을 배우고 싶은 마음은 있어?"

"네, 이쪽 일 배우고 싶어요."

"지금 사수가 있나? 없으면 내가 시간 있을 때 봐줄게. 모르는 거 있으면 말해요."

일주일 후 웬일인지 그 직원이 내 옆자리로 배정이 되어 오게 되었다. 사실 내 옆자리가 비어있기도 했다. 사무실에서 그 직원의 사수로서 봐주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자리 배정으로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매주 월요일마다 직원 전체 회의 시간에 초보 직원 일을 전체적으로 점검을 하라고 정해졌다. 보통 나에게는 결재 서류가 올라오지 않지만 초보 직원의 서류들은 1차 검증을 위하여 올라왔다.

나는 초보 직원에게 다시 물었다.

"정말 이쪽 일을 배우고 싶은 거 맞죠?"

"네."

"내가 왜 물어보냐면 일을 할 의지가 없으면 가르쳐줘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에요."

"짧은 시간이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대충 파악했죠?"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당부의 말을 건넸다.

"일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내가 아는 선에서 가르쳐 줄 거예요. 회계, 세법 등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게 있을 수 있어요. 모르는 것은 어느 경로로 들어가면 자료를 찾을 수 있는지 알려줄게요. 참고하면 돼요.

어느 정도 성실함을 내게 보여줘요. 일 할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철저하게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편이기 때문에 그런 불상사가 안 일어나길 바랄게요."

1년 정도 사수로서 최선을 다했다. 그 사무실은 얼마 다니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대표님의 사업 방향과 직원 복지 등에 관련하여 서로의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내가 그 회사를 그만두고 가끔 초보 직원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3년을 더 다녔다고 한다. 다른 회사로 이직을 충분히 잘할 수 있게 되는 경력이 되었던 것이다.

그때 고참 직원은 친구 사이로 발전이 되었다. 그리고 가끔 듣게 되는 하소연이 있다.

"요즘 애들은 왜 그래, 싸가지가 없어. 일을 배우려는 마음보다는 빨리 퇴근하려고만 해. 성의가 너무 없어.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우리가 겪었던 시절과 지금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우리의 잣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

일을 처음 배우는데 아는 게 있을까? 당연히 없을 것이다. 그러니 방향을 제시를 해줘야 한다. 우리가 맨땅에 헤딩하는 격으로 일을 배웠더라도 그때의 선배들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을 수 없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몸소 깨닫지 않았나. 일단 먼저 후배들에게 손을 내밀어보자. 진심으로 대하는 선배를 무시하는 후배는 없을 것이다. 정말 배우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이라면 빨리 깨우치게 만들면 된다. 아마 대부분의 후배들은 어떤 식으로든 의지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약간의 시간을 내어줘라. 그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잘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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