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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나무 Apr 25. 2024

퇴직 후 일상

일상에서 소소한 기쁨을 느끼며 살고 싶다

    길가에 있는 담장 위로 백목련이 꽃봉오리가 만발하다. 순백색의 청조한 하얀 꽃봉오리는 햇빛에 반짝이며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도로 옆 인도에 있는 사철나무들도 연녹색의 새 순들이 여기저기 고개를 드밀고 있다. 어린 새싹들이 오밀조밀 모여 도란거리는 듯하다.

    봄, 봄이다. 봄이 드디어 내가 사는 인천에도 왔다. 남쪽 지방에는 3월 첫 주에 동백꽃, 매화꽃이 이미 만발하였는데 이제야 새순들이라니, 봄소식이 한 달이나 차이가 난다.

   아무리 인천이 남쪽과 비교해서 북쪽에 있지만 너무 늦잖아... 하고 혼잣말로 투덜 거린다. 그래도 잊지 않고 찾아온 봄소식이 반갑다.

    '늦었지만 와줘서 고마워. 네가 오길 많이 기다렸어'


   작년에 오랜 직장 생활을 마치며 퇴직하였다. 퇴직 전에는 퇴직자의 삶을 부러워하였다. 그래서 '은퇴' '퇴직'이라는 단어 검색을 많이 하였다.

   누군가 퇴직 6개월이 된 나에게 질문을 한다면 "기뻐요, 즐거워요 " 하고 말하고 싶지만 "힘들었어요"라는 말이 불쑥 나온다.  퇴직을 하자 기뻐할 새도 없이 바로 다가온 건강 문제로 발이 묶여버렸기 때문이다. 평소 건강하지 못한 몸을 가지고 정신력으로 버텨왔던 지난 시간들이 퇴직 후 긴장이 풀어지자 바로 무너졌던 것 같다. 집과 병원을 왕복하면서 나의 퇴직 후 첫 반년의 삶은 그리 단순히 흘러갔다.


   그래도 그 와중에 배움의 열기는 놓지 않았다. 보건소, 도서관. 평생학습관. 구청 등 기관에서 각종 강좌 및  행사들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을 알았다. 멋진 보물지도를 발견한 듯 깜짝 놀라고 기뻐했다. 나의 배우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길이 이미 쉽게 열려 있었던 것이다. 퇴직 후 무얼 하고 지낼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직장 생활 때는 일이 많아 정시에 퇴근이 어려웠고 남는 시간은 지쳐있어 쉬기에 바빴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맘의 부담도 없으니 행복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듣는 강좌가 많으니 회복되지 못한 몸에 힘겨움을 느끼고 스트레스가 쌓인다. 이것도 욕심내면 안 되는가 보다. 

앞에 맛있는 것이 잔뜩 있는데 먹지 못해서 속상한 느낌이 이런 것인가, 신청했던 강좌들을  취소하며 깊은 아쉬움을 느낀다.


   아직은 좀 쉬어야 할 때이고 아무도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은 잠시도 쉬지 못하고 무엇을 이루고 성취해야 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낀다.

달리는 기차가 당장 멈추지 못하듯 성과중심의 세상 속에서 살아온 내가 갑자기 변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자꾸 고개를 드미는 배움의 욕구를 자제시킨다. 단순하게, 욕심을 과감하게 자르고 여유를 가지도록 하자. 무엇이던 발전하기 위해선 적절한 집중을 해야 한다.

  올해는 체력을 회복하는 것과 글쓰기에만 집중하기로 하였다. 건강해야 활기 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고 나의 살아가는 모습을 글로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글쓰기도 쉽지는 않다.

"주제가 무엇인가요? 도망가 버린 주제를 찾아오세요."

"너무 혼자만의 세계에 몰입되었네요. 다른 사람도 글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써야 해요"

"맞춤법, 띄어쓰기가 안 맞잖아요. 기본은 지키셔야지요."

   단순한 일상의 글이라 가볍게 생각했는데 내 글에 수정할 부분이 이리 많은 것에 대해 놀란다. 그리고 단 3줄이면 요약되어 버리는 상황 설명을 한 장 반 이상 써야 된다는 것에 당황한다.

감성이 풍부하게 깃든 글을 쓰고 싶지만 나의 감성은 어디로 꼭꼭 숨었는지 찾기가 어렵다. 대체 언제나 제대로 된 글을 쓸 수가 있을까. 목표한 길이 멀게 느껴져 답답하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는다. 끈기 있게 하나씩 배워나가면 되지.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게 되는 이점이 있다.

글쓰기는 내 삶의 흩어진 부분들을 정리하고 삶의 주제를 찾고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귀한 깨달음을 준다. 그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다.


    체력관리는 매일 걷는 것으로 한다.

다행히 근처에 걷기 좋은 공원이 있다.

매일 만보계 앱을 설치하여 5000보씩 걷다 최근에는 7000보 이상으로 상향하였다.

만보계를 사용하니 목적한 걸음수를 채우려고 노력하게 된다. 가끔 걷기 챌린지를 신청하여 달성하면 상품도 주니 소소한 즐거움도 있다. 좀 더 체력을 회복하면 본격적으로 여행을 다닐 생각이다.

   요즈음 공원은 산수유, 매화꽃이 피어 화사하고 밝은 기운이 넘친다.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주인과 함께 산책하는 개들이 코를 킁킁거리며 풀냄새를 맡는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즐겁게 지나간다.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부부가 다정히 걷는다. 연인들이 의자에 앉아 쉬면서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다. 

평화로운 일상의 풍경이다. 바라보는 내 마음도 따스하고 행복한 느낌으로 충만하다.


   사람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어떤 삶이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이 만족하는 삶의 기준점이 어딘가에 달렸을 것이다.

  

  퇴직 후 일선에서 물러선 난  

  일상에서 삶의 기쁨들을 찾고

  즐기는데 만족하고 싶다.

  그동안 지나쳐 버렸던 것들을  

   관심을 주고 관찰하고 느끼면서,

   잔잔한 감동도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이루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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