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집의 아이는 오늘도 새벽 5시 반에 일어났고, 그에 따라 나도 기상을 했다. 그 애는 눈을 뜨면 침대에서 바닥으로 ‘쿵’ 점프를 한다. 천장이 무너지랴 큰 소리가 나고 이어서 다다다다, 달리는 소리가 들린다. 두 명의 아이들 중 누구일까. 아마도 남자아이일 확률이 높겠지.
강남은 아니지만 이 지역의 금수저들이 모여산다는 동네. 대단지 아파트에 조경이 멋지고, 부동산 아줌마 말로는 주민들의 수준도 높다고 했으나, 이 집에 이사 온 후로 잠을 제대로 자 본 적이 없다. 아침마다 뛰는 소리에 잠을 깨고, 시도 때도 없이 물건 떨어지는 소리, 방문과 현관문에 심지어 냉장고 문까지 쿵쿵 때려 부수듯 여닫는 소리에 깜짝 놀라야만 했다. 바지런한 윗집은 밤 12시가 넘어서도 물건을 정리하는지 달그락 소리가 났다. 모든 식구들이 시간차 공격을 하듯 소리를 내고 있다. 이 아파트는 날개형 구조라 옆 라인과는 떨어져 있고, 아래층은 맞벌이 부부라 한낮에는 조용한 만큼 소음의 근원지는 주로 윗집이었다. 삼대가 알콩달콩 모여 사는 그 집. 큰맘 먹고 올라가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그들은 아파트의 구조적 문제라 했다. 윗집 소음 때문에 나는 잘 자고 싶어서 신경안정제도 먹고, 이어폰을 많이 해서 귀에 염증도 나버렸는데(이비인후과에 갔더니 접촉성 피부염이란다.) 자기들은 아무 잘못이 없단다.
인간의 오감. 시각은 눈 감으면 그만이고, 후각은 코가 금세 마비되므로 잠시만 참으면 넘어갈 수 있고, 또 촉각과 미각은 직접 대하는 것만 신경 쓰면 된다. 하지만 청각은 멀리서도 들리고 좀처럼 마비도 되지 않으니 참 난감하다. 귀마개가 있긴 하지만 공기를 타고 흐르는 진동까지는 막을 수가 없다. 윗집이 자발적으로 조심해 줄 것 같지는 않고 어찌 궁리해도 이사 가기 전에는 이 소음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도대체 어이할꼬.
밴쿠버에 살 때에도 심각한 소음을 겪은 적이 있다. 생판 모르는 남의 나라에서 기막히게 멋진 집을 구했고 무사히 이사도 했건만 행운의 여신은 복병을 감춰 두었다. 층고도 높고 지음새도 튼튼해서인지 윗집의 문제는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한 범인은 바로 소방차. 동네 탐방을 하면서 집 앞에 소방서가 있는 것을 봤지만 그게 소음을 의미한다고 인식하지 못했었다. 이사한 첫날밤, 사이렌 소리에 귀가 터지는 줄 알았다. 그곳의 소방차는 앰뷸런스와 짝을 이루며 달리니 그 불협화음은 대단했다. 집안 가득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문을 열면 공원에, 걸어서 10분이면 백화점, 게다가 멀리 바다까지 보이던 그 집이 순간 골칫덩이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났으려나. 한낮이었다. 따르르르릉~ 비상벨이 시끄럽게 울렸다. 혼자 있던 나는 무서워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화재경보 같다고 했다. 비상계단으로 갔더니 위층에서부터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었고, 그들과 함께 1층 로비에 도착했다. 그런데 로비는 사람들이 모여 있을 뿐 탄 냄새도 없이 깨끗했다. 둘러보니 다른 비상계단에서 소방관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키가 2m도 넘고, 양팔에 어른 한 명씩 아이라면 두세 명도 거뜬히 들 것 같은, <고스트버스터>의 주인공 같은 백인남자들이었다. 그들은 말하길, 5층 할머니가 욕조에 더운물을 틀어놓고는 깜빡한 탓에 그 증기로 화재경보기가 작동한 것이라고, 이미 점검도 다 끝냈으니 안심하고 귀가하라고 했다. 얼마나 다행이던지.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로 소방차 소리 때문에는 잠을 설치는 일은 없었다. 그 동네에서 누구도 소방차가 시끄럽다고 말하는 이가 없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불이 나자마자 광속으로 달려와 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그 사이렌 소리는 소음이 아니라 '내가 너를 지키고 있어'라는 싸인이었고, 아무 연고 없는 타국에서 믿을 만한 보호자가 생긴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해졌다. 소리가 상황과 마음에 따라서도 그렇게 달리 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렇다면 긍정적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윗집에 대해 내 마음을 달리 한다면 이 끔찍한 소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흔히들 말하는 사랑스러운 자기 아이가 뛰고 있다거나, 감각이 무뎌진 연로한 부모님이 소음을 낸다고 생각하는 마인드 컨트롤이다. 하지만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는 것은 보통의 의지로는 쉽지 않다. 그간 쌓인 스트레스 때문에 윗집이라면 이미 치가 떨린다. 밴쿠버에서처럼 화재가 나거나, 혹은 막장드라마처럼 알고 보니 윗집이 어릴 적 헤어진 가족이라거나? 그런 드라마틱한 일이 일상에서 쉽게 일어날 리 없을 테다.
이 끔찍한 층간소음에서 살아남으로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쓰레기장에 가서 계란판이라도 산더미처럼 모아볼까. 고등학생 때 피아노를 전공하는 친구는 말했었다. "너네들, 계란 먹고 계란판 다 갖다 줄래? 내 방 방음 공사하게.” 나도 그 친구처럼 우리 집 천장 위에다 빼곡히 계란판을 붙이면 이 피 말리는 층간소음에서 해방될까. 아니면 하다못해 뽁뽁이라도 겹겹이 붙여볼까. 이 모든 것이 궁상맞은 궁리에 불과했다.
층간소음과 관련된 기사를 검색하다가 아파트의 구조에 대한 글을 봤다. 한국 아파트의 85%가 벽식 구조, 그러니까 기둥 없이 벽 자체가 기둥 역할을 해 소음이 벽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는 구조라고 했다. 건설사 사장이나 건축허가를 내준 높은 분들은 이런 아파트에 살지 않으시겠지. 집이라도 탄탄히 잘 지었다면 완전 진상인 윗집을 만나도 소음이 좀 덜했을 텐데. 집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힘 있는 그들과 반성도 개선도 모르는 양심 없는 윗집에게 제발 오뉴월 서리라도 내리기를 바랐다.(그깟꺼 내려봤자 아무런 타격도 없겠지만.) 차분히 심호흡을 하고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수가 없었다.
정신없이 방울을 흔들며 굿을 하는 무당이나, 어떤 후궁이 볏짚으로 중전 인형을 만들어놓고 바늘로 찔러대던 사극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런 주술은 어느 시대든 어느 나라에나 있었다고 하던데, 그 원시적이라 여겼던 일들이 갑작스레 수긍이 갔다. 그 짓을 하던 이들은 얼마나 간절했을까. 빌어먹을 층간소음 덕분에 시공을 초월해 인간에 대한 이해심과 타인과의 공감대가 한없이 확장되어만 간다. 이러다 온 우주와 두루두루 소통할 것 같다.
(2020. 층간소음에 시달리던 어떤 날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