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카운터에서 차를 주문하려는데 친구가 말했다.
“케이크도 하나 시켜, 같이 먹으면 맛있겠지? 근데 그거 있잖아. 뭐더라. 동그랗고 색깔 예쁜, 그게 뭐지, 그거, 그거 있잖아. 그게 나을까?”
듣는 순간, 그게 뭔지 알았다. 바로 그거였다. 동그랗고 색깔 예쁜 거! 거기다 플러스하자면 젊은 애들이 좋아하는 인기 많은 것이다.
하지만 죽어도 그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프랑스 과자라는 것도 알겠고, 달달하다는 것도 알겠는데. 이렇게 단서만 남긴 채 그 이름은 결코 내게 불리기를 거부했다. 그러다 섬광처럼 한 글자 '마'가 떠올랐다. 기다렸다는 듯이 입 밖으로 ‘마들렌’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 말꼬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그 이름이 아님을 알았다. 연이어 ‘마르셀 프루스트’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참으로 재미없던 책까지 떠올랐지만 그 ‘동그랗고 색깔 예쁜 거’의 정체는 오리무중이었다. 친구에게 물어도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수출 100억 불 달성의 빛나는 경제성장에 가슴 벅차하던 어린 시절과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 향연의 청소년기를 보내며 한강의 기적이 어찌 승화되는지를 체감한 세대다. 게다가 강남과 신촌을 오가며 대학 시절을 보냈으니 서양과자 이름 하나쯤은 쉽사리 떠올릴 수 있는, 결코 그 이름에 혀가 꼬일 클래스는 아닌데, 그런데도 그 이름을 모르다니. 아, 배신의 기억력이여!
카운터 앞쪽 자리에 앉아있던 다른 친구가 우리가 답답했는지 “마카롱!”하고 이름을 토해냈다. 그래, 바로 그거였다. 깜빡 암흑 속에 있던 그 한 단어는 내게는 잃어버린 시간 속 유물이었나. 마들렌과 마카롱. 이들은 자주 먹는 음식도 아닌데, 왜 기억력은 그리도 차별을 두었을까.
중학교 때였다. 어디선가 ‘마들렌’이란 이름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세계전집이나 동화책에서 본 것이었겠지. 그 시절에는 먹방 TV도 없었고, 주변에 이국적인 디저트를 갖춘 제과점도 많지 않았으니 출처는 거기뿐이다. 마들렌이란 이름은 생소했지만 어감이 좋았다. 만화《캔디캔디》에서 캔디 친구로 나올 것 같은 이름이었다. 금빛 곱슬머리를 날리는 조금은 새침하면서도 귀여운,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여자아이로 말이다. 함께 수다를 떨어도 될 것 같은 즐거우면서도 낭만적인 느낌이랄까. 그래서였을까. 먹어 보지도 못했던 ‘마들렌’의 이름이 기억에 새겨진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학교를 다녀온 어느 날 엄마가 책상 위에 간식을 올려두었는데, ‘마들렌’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름으로만 알던 그 실체를 드디어 만나게 되다니, 반가웠다. 비닐을 벗기고 입에 넣는 순간, 카스텔라보다는 약간 씹히는 맛도 있으면서도 버터 향내가 쫙 퍼졌다. 그 맛과 향은 유럽 어딘가로 나를 이끌었고. 햇살이 가득 쏟아지는 테라스에 앉아서 화사한 꽃무늬 접시에 놓인 마들렌을 먹는 듯했다. 생각만 해도 언제든 포근하고 기분 좋았다. 인절미나 떡볶이가 줄 수 없는 새로운 세계였다.
그렇다면 인기 디저트라는 ‘마카롱’. 그것은 왜 나의 기억에서는 소외되었던 것일까. 케이크나 과자 등 디저트의 천국이라고도 불리는 일본에서 몇 년을 살았으니 분명히 먹어도 봤을 텐데. 곰곰 생각해 보니 확실한 기억이 있긴 했다.
십 년 전쯤 취리히 공항이었다. 귀여운 핑크, 선명한 노랑, 꿈꾸는 듯한 연두 등 알록달록한 마카롱이 눈에 들어왔는데 하필이면 출국 게이트 면세점에서였다. 딱 2 스위스프랑이 손에 있었으니 커다란 통을 살 수는 없었고, 판매원에게 낱개 판매는 안 하냐고 물었다. 그녀는 No~라고 말하곤 빙긋 웃으면서 스위스 여행은 어땠냐는 질문과 함께 아이와 내 손바닥에 마카롱 하나씩을 얹어주었다. 시식용이라고는 했지만 우리에겐 특별한 선물이었다. 덕분에 비행기 안에서 그 예쁜 색깔과 동글한 모양을 탐색하듯 마카롱을 먹었다. 제법 사이즈도 크고 식감과 향기도 괜찮았으며 무엇보다 판매원의 친절함이 감사했다.
여기까지만 쓰자면 스위스 여행의 훈훈한 기억을 완성해 주는 마카롱으로 기억이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너무 달아서 누군가 내 입안에 백색 설탕이 쏟아부은 느낌이었다. 안타깝게도 마카롱은 눈으로는 너무 사랑하지만, 입으로는 한 개만 먹고 거절해야 하는 과자가 되었다. 이후에도 그 귀여운 자태에 끌려 몇 번 사봤으나 많이 먹을 수는 없었다.
팝업북(Pop-up book)처럼 폴짝, 기억의 표면으로 솟아올랐던 ‘마들렌’은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준 맛이었고, 머릿속 어딘가에 처박혀 있던 ‘마카롱’은 환상이 깨지는 맛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나의 기억력은 더 행복했던 ‘마들렌’을 선택한 듯했다.
그날 우리는 함께 수다를 떨며 디저트를 즐겼다. 왜 그리도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는지, 마들렌과 마카롱의 차이는 무엇이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도 않았다. 수다는 즐겁고 디저트는 맛있었으니까. 노쇠한 기억력을 탓하기는 했지만, 망각 또한 적당히 넘어가며 즐겁게 살라는 신의 계시 혹은 자연의 섭리쯤으로 여기자고 결론을 내렸다. 또다시 그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동그랗고 색깔 예쁘고 달달한 거, 그거 주세요.’라고 말하면 될 일이었다. 그깟 이름 하나 모른다고 어떻게 될 세상도 아니도, 잊힌 것은 잊혀질 만한 이유가 있으니 그대로 묻어둬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