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다 만들었어?”
“응, 맛은 뭐 그냥 그렇겠지만 몸에는 좋겠지. 먹어.”
“그냥 사다 먹지. 일하지 말고 쉬라니까. 뭘 이렇게 많이 차렸어.”
아이는 맛있게 밥을 먹는데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은 아니었다. 음식을 씹고 있는 표정이 탐탁지 않아 보였다.
그날 아침이었다. 날이 흐린 게 비가 올 것만 같았다. 관절이 쑤셨고 게다가 층간소음 때문에 잠을 설쳤더니 어깨도 뭉쳐 있어서 자고 깬 게 아니라, 맞아서 누워있다 잠시 일어난 기분이었다. 이틀 전인가 대청소를 한답시고 종일 걸레질을 한 것도 화근이었다. 손목과 손가락 관절이 부었다. 흐린 날에는 항상 꾀를 부리고 싶어진다. 그만큼 컨디션이 엉망이란 뜻이기도 하다.
아침에 학교 가는 아이에게 “저녁에 스파게티 먹을래?”라고 물었다. 아이는 평소와는 다르게 시큰둥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니, 건강한 거 먹고 싶어.” 어젯밤에 컵라면을 먹고 잤다는 게 이유였다. 스파게티는 시판 소스를 이용하니 고기와 야채를 아무거나 넣고도 만들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다른 반찬을 뭐를 줘야 하나, 안 그래도 몸이 찌뿌둥하니 만사가 귀찮은데, 일이 늘었다.
외출을 하고 돌아오는 길, 반찬을 몇 가지 사려 했으나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계란말이는 이미 지겹게 먹었고 오이도라지 무침은 붉은 것이 너무 매워 보였고 연근조림은 시꺼먼 모양새가 먹지 않아도 짠맛이 입안에 돌았다. 우리 집은 싱거운 것, 양념이 적은 것 등 자극이 없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니 사실 반찬가게에서 살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냉장고에는 아직 야채가 남아있을 테고 냉동실에 고기도 있으니 그걸로 저녁을 해결하자고 빈손으로 집에 왔다.
야채를 다듬는 일은 언제나 귀찮으니 빨리 해치워야 했다. 단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집중력을 발휘해 한 번에 휘리릭, 느타리버섯을 볶고 시금치를 데치고 무치고 셀러리와 상추를 씻었다. 그리고 냉동실에 있던 고기를 꺼내 볶았다. 그런데 그렇게 차려진 식탁이건만 남편은 감사하기는커녕 뚱한 얼굴이라니. 뭐가 문제란 말인가. 칫!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결혼하고 얼마 안 되어 우리 집에 엄마가 왔을 때였다. 음식을 한가득 챙겨 온 엄마를 보며 고맙기도 했지만 참 난감했었다. 으레 친정엄마는 그러려니 한다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내 신혼집은 일본이었으니 엄마는 집에서 인천공항까지 가서 비행기를 타고 나리타공항에 내려서 전차를 타고 우리 집에 온 것이었다. 무겁고 힘들게 뭐 이리 많이 가져왔냐는 내 말에 엄마는 말했다. “남의 나라 살면서 이 정도는 있어야지.”
엄마는 김치, 명란젓, 설렁탕, 순대, 떡, 빈대떡, 다진 마늘 등을 꺼내 놓았다. 한국의 작은 가게를 하나 옮겨온 것 같았다. 한국인의 필수품 김치는 이해했다. 양이 많은 건 싫었지만. 일본 땅에서는 보기 힘든 설렁탕, 순대 역시 꽤 무거웠지만 내 희망목록이기도 했으니 반가웠다. 그런데 엄청 큰 통에 담겨 있는 마늘은,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는 김장을 몇 번 해도 될 거라 했지만 이미 김치라면 엄마가 가져온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생존을 위해 기본적인 에너지만 섭취하면 된다는 사람이었고, 먹는 것을 귀찮아했으니 그 음식들은 심하게 넘쳤다. 다른 음식은 돈을 주고 산 것이니 괜찮았지만, 마늘은 일일이 손질해서 갈고 얼리고 통에 다시 담아 온 것이라 부담스러웠다. 엄마는 관절도 안 좋은데,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마늘을 까는 모습이 자꾸만 보이는 듯했다. 그깟 마늘이 뭐라고. 도대체 왜 아픈 손가락으로 쓸데없는 짓을 했나 싶었다. 그 시간에 차라리 드라마를 보는 게 내 속이 편하다는 걸 엄마는 왜 몰랐을까.
마늘은 별로 먹지도 않는데 왜 이리 많이 가져왔냐고 해도 엄마는 들은 척도 안 했다. “음식 할 때 있어야지. 몸에 좋은 거니까 냉장고에 넣어두고 다 먹어.” 내가 동굴 속 웅녀도 아닌데, 아마도 그 마늘은 반평생은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이래저래 짜증이 난 나는 엄마 몰래 바닥에 놓인 마늘 보따리를 발로 걷어찼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은 다 엄마 마음이고 사랑이니 이해하라고 나를 말렸다.
남편의 신통찮은 표정은 바로 그날 엄마를 바라보던 내 모습이었었다. 엄마한테는 아픈데 왜 마늘을 깠냐고 해놓고서 긴 세월이 흐른 오늘, 나는 내 몸속에 흐르는 엄마의 유전자를 확인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