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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의마음 Dec 22. 2024

모기가 물다

     

“그 약, 너 계속 먹지? 근데 모기한테 물리니?” 

바깥의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 급한 마음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약은 먹고 있는데, 모기 얘기는 뭐니?”

뜬금없는 내 질문이 이해가 안 갔는지 친구는 반쪽짜리 답을 하며 물었다.

“그 약 먹는 동안 모기한테 안 물렸거든. 근데 나 약 끊었잖아. 지금 산책하고 왔는데 엄~청 물렸어.”     


몇 해 전 어떤 흰 알약을 먹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병 탓에 중증환자라는 딱지를 붙이게 됐기 때문이다. “수술도 잘 됐고, 방사선도 무사히 마치셨고요. 그리고 이 약은 재발을 예방하는 것이니 하루 두 번씩 꼭꼭 잘 드세요. 부작용 같은 건 걱정  마시고요.” 유명한 칼잡이인 대학병원 전문의는 마치 감기의 처방을 알리듯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그 세계에서 내 병은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 어찌 됐건 나는 별로 상한 곳 없이 멀쩡히 살아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기 시작한 그 시점부터 묘한 증상이 생겼다. 누구도 설명 안 해준, 약 설명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은 생소한, 증상이라고 말하기도 힘든 증상이었다. 

‘모기가 나를 물지 않는다!!’      


원래 모기란 녀석은 나를 미치게 사랑했다. 같은 방에서 나란히 잠을 자도 다른 사람은 멀쩡한데 나만 여기저기 다 뜯기는 건 당근이고, 덕분에 여름 내내 벌겋게 퉁퉁 부은 팔다리를 하고 민망해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독한 산모기에 물렸을 적에는 피부과에서 벌레 알러지라는 진단과 함께 알록달록한 약을 종합선물 세트처럼 처방받기도 했다.      


이런 전력이 있는 내가 모기의 관심사에서 멀어지다니, 놀라웠다. 최초로 그런 날을 맞았을 때는 드물게 운이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해마다 그런 행운이 되풀이됐다. 약을 먹기 시작한 그 여름을 시작으로 연거푸. 처음에는 좋았다. 하지만 행운이 반복될수록 의심이 생겼다. 속설로 모기가 잘 무는 사람은 땀에서 다른 사람보다 단내가 많이 난다고 하는데, 혹시 그 약 때문에 달았던 나의 냄새가 변해버렸던 걸까. 수술도 방사선도 다 끝난 마당이니 그 흰 알약만 빼면 나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는데.    

  

“그럴 리가. 모기가 그 약을 어떻게 알겠어? 난 약도 매일 먹고 집에서 물리기도 매일 물려. 약 먹기 전이랑 똑같거든. 아마 네가 모기 없는 데만 다녔나 보지.” 

전화 속의 친구는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듯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친구는 나와 같은 병증으로 나보다 1년쯤 뒤에 발병해 같은 환우로서 동지애를 나누는 사이다. 수면장애를 비롯, 이것저것 작은 불편한 증상들을 느낀다는 공통점이 있고, 차이점이라면 나는 그 약을 견디지 못하고 작년에 끊어버렸고 친구는 아직 견뎌내고 있다는 정도일까. 중요한 게 또 있긴 하다. 나는 피부든 감정이든 뭐든 민감한데 친구는 나에 비하면 뭐든 그럭저럭 둔감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많은 일들을 잘 넘기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지만.      


모기가 없는 곳만 돌아다녔을 거라는 것은 친구의 착각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의 행동반경은 비슷하다. 더운 여름이니 쇼핑몰에 가기도 했지만, 길을 걷기도 하고 한강시민공원에 앉아있기도 하고 심지어 산에 오르기도 했다. 엄밀히 말해 산림이 울창하지 않은 낮은 언덕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모기를 만날 환경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몇 해 동안 모기의 공격 대상이 되지 않다가 오늘만 유달리 모기에게 잔뜩 뜯어먹힌 것이다.       


의사는 분명히 그 약을 먹어도 신체에 별다른 변화가 없을 거라 했지만 혹시 모기는 알고 있던 게 아닐까. ‘동물의 세계’ 같은 다큐멘터리에서 자연의 신비한 능력을 본 적이 있다. 인간은 인지할 수 없는 집단생활을 하는 꿀벌들의 신호라든가 지진을 예견하는 동물들의 아우성 같은 것들 말이다. 어쩌면 모기는 내 주위를 앵앵대며 세밀한 후각으로 간을 보고는 한마디 날렸을지도 모른다. “No~no~ 불량식품이군!”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그렇다면 그 시절, 나는 모기조차 거부한 품질 불량의 ‘약 하는’ 인간에 불과했단 것인가. 건강한 인간의 부류에서 실격한 것도 서러운 판에 모기한테까지 소외를 당했다니. 오마이갓! 예기치 못한 상실감이었다. 게다가 같은 병증의 친구는 멀쩡히 모기에게 물린다지 않는가. 평소 민감한 나는 피 역시 민감해서 맛이 변질된 것이고, 뭐든 그러려니 넘어가는 친구는 약에 대해서도 적당히 넘어간 것인가. 같은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나만 따였다니.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발목 부근이 가려웠다. 새 운동화 때문인가 싶었다. 지는 해의 마지막 빛이 쏟아질 즈음에는 치마단 부근도 간질간질했다. 시접의 박음질 탓인가 했다. 목도 끈끈하고 꽤 가려웠다. 땀 때문일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다 틀렸다. 모기의 습격 때문이었다.     

 

예닐곱 군데쯤 되는 불긋불긋 작은 반점들, 심지어 무릎 뒤편은 쫘르르 세 군데나 물렸다. 약통에서 자고 있던 물파스는 효력이 다 떨어진 것인지 발라도 가려움이 가시지 않았다. 인정사정없는 미물, 뜯어 먹어도 좀 염치껏 먹지! 내 피를 이리도 배 터지게 빨아먹다니 그 모기는 아사餓死 직전이었나 보다. 그들의 세계에서 나는 꺼져가는 생명을 되살려놓은 수호신으로 등극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모기는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그 약을 끊었고, 더 이상 불량식품이 아니라는 것을.      


물린 자리가 점점 더 가려워져 온다. 중증환자가 되기 전의 감각과 전혀 다르지 않다. 드디어 나는 약물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제대로 된, 맛있는 인간으로 회귀한 것인가. 점점 더 발갛게 이스트를 넣은 빵처럼 물린 자리가 부풀어 오른다. 아마 오늘 밤은 잠을 설칠 만큼 가렵고 그러다 찌릿찌릿 묵중하게 아플 것이다. 긁어도 가려움이 사라지지 않는 그 자리를 탁탁 세게 쳤다. 조금 단단하고 뜨끈한 느낌이 기특했다. 새 물파스를 사러 나가야겠다.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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