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와 잎이 늘어진 풍성한 나무 아래에서 소년과 소녀가 시소를 타고 있다. 서로를 향하는 옆모습만 그림자로 보일 뿐 그들의 세밀한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과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서로를 바라보는 걸까.
낭만적인 시나 소설을 구상하는 듯하지만, 이것은 우리 집 깨진 접시에 대한 감상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손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나갔다. 애고, 아까워라. 나는 그 접시를 들여다보며 애도 중이었다.
맑은 푸른색을 바탕으로 그림이 조각된 카메오풍의 그 접시는 언제 봐도 상큼했다. 크래커와 치즈 한 조각을 담아도 멋지게 잘 차린 음식처럼 보이게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비주얼이란! 음식을 다 먹고 나서도 식탁 위에 놓아둔 채 그림처럼 바라보기도 했다. 소년 소녀의 순박하고 깨끗한 느낌이 투영돼 나도 맑아질 것 같았다.
이 접시는 예뻐기도 했지만 첫정이 들어서 더 특별했다. 캐나다로 이사를 갔을 때 원래는 딱 일 년만 살 예정이었던지라 우리 짐은 고작 이민 가방 몇 개였다. 이케아에서 가구를 사면서 접시와 컵도 집어넣었지만 그저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그런데 런던드럭에서 이 접시를 본 순간 멈칫, 했다. 얄팍하고 가벼운 본차이나에 은은한 동화 같은 그림이라니, 눈이 안 갈 수가 없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는 수입품을 제외하고는 백자나 청자풍의 단색 분위기가 대세였으니 그 접시는 참으로 신세계였다. 태평양을 건너 내가 다른 문화권에 발디디고 있음을 실감케 해주었고, 이후 거의 날마다 우리 집 식탁 위를 오르내렸다.
고등학교 시절 《조침문》을 배울 때 참 별나다 싶었다. 바늘 부러진 게 아쉽긴 하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구구절절 슬펐을까 했는데. 이제야 저자 유씨부인의 마음을 알겠다. 옛날 여자들에게 바느질은 거의 날마다 하는 살림이자 취미였을 테니 얼마나 정이 들었을까. 바늘은 도구 이상이었을 것이다. 아깝고 불쌍한 마음을 읊은 것은 결코 오버over가 아니었다. 게다가 바늘이 귀한 시절이었으니 더했겠지.
나 역시 이런 마음이지만 이미 깨진 접시. 그간의 정을 아무리 되새김질해도 깨졌으니 버려야만 했다. 의미는 과거의 몫이고 현재 남은 것은 위험한 파편에 불과했다. 손을 다칠까 조심조심 큰 파편들은 잘 집어 휴지통에 넣었고, 자잘한 것들은 청소기를 돌려 빨아들였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오늘이었을까. 찜찜했다. 오늘은 1월 1일, 새해의 첫날이었다.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그릇을 깨뜨리면 열에 여덟아홉은 불행이 찾아왔는데 혹시 오늘의, 아니 올해를 예언한 것인가. 사실 어쩌면 불행은 이미 왔는지도 몰랐다. 이렇게 접시를 떨어뜨린 것 자체가 예삿일이 아니니까. 지금까지 살면서 신혼 때 컵 하나를 깬 것 외에는 실수가 없었고, 이사 때문에 깨진 접시가 있긴 했지만 그 역시 이사 아저씨들 잘못이었다. 말하자면 아침에 깨진 접시는 세월만큼 내 운동신경이 둔해졌음을 증명한 것이었다. 새해를 맞아 나이를 한 살 더 먹고 관절도 한 살만큼 더 늙었다. 손가락 마디가 쿡쿡 쑤셨다. 오호통재라! 오호애재라! 접시보다도 더 아쉽고 슬펐다.
울적했으나 이참에 다른 접시들을 찾아보자고 식기장을 열었다. 똑같은 모양은 아니었지만 비슷한 하늘색 접시가 있었다. 노란색, 핑크색, 작은 꽃무늬, 피터래빗 등 여러 종류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간 쓰던 것만 쓰느라 다른 접시들을 완전히 잊은 것이다. 이렇게 접시가 많았다니!
그것들을 보니 깨진 접시에 대한 다른 해석이 가능해졌다.《춘향전》을 보면 춘향이 옥중에서 거울이 깨지는 꿈을 꾼 장면이 나온다. 점쟁이들은 누구는 거울이 깨졌으니 인생이 완전히 쪽박 난다고, 또 누구는 흐릿한 거울(조선시대의 거울이니 당연히 성능이 떨어졌겠지)이 깨졌으니 선명하고 좋은 일이 다가올 것이라고 해석했다. 우리 모두 춘향이의 결말을 아니 누가 맞는 해석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이 깨진 접시도, 예쁜 접시를 골고루 놓고 예쁘게 잘 차려 먹고살라는, 앞으로 그런 날이 펼쳐질 것이라는 길조일지도 몰랐다. 식탁을 차렸다. 긴 시간을 묵묵히 식기장 안에서 기다려온 예쁜 접시들이 드디어 빛을 보았다. 이별과 함께 찾아온 새로운 만남이 곧 그 빈자리를 채웠다.
안타까운 일 한 가지가 있다고 해도, 꼭 그렇게만 바라볼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다른 기회를 불러올 수도 있으리라.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삶의 지혜겠지. 그런 자세와 지혜들이 쌓여 좋은 인생을 만들어 갈 테고. 새해도 그렇게 힘내며 살아보자!
(어떤 새해의 첫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