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들은 오래전부터 북극해산 청어를 아주 좋아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런던까지 살아있는 상태로 운반하는 일. 운반 도중 청어들이 많이 죽어버려서 궁리 끝에 수조에 천적인 메기를 넣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이게 왠일? 이 방법은 예상외로 효과적이어서 청어들이 쌩쌩했고, 영국인들은 신선한 맛을 즐길 수 있었다고 한다. 많이 들어본 이 이야기는 역사학자 토인비가 ‘도전과 응전’의 예화로 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새삼 청어 얘기가 떠오른 것은 우리집 식기세척기 때문이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은 지은 지 10년쯤 되는 아파트로 유명브랜드의 빌트인 식기세척기가 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릇에 붙은 음식물을 다 떼내고 물로 휙 헹군 상태에서 집어넣어도 그릇은 광택을 잃고 유리컵은 서리가 낀 듯 뿌옇게 되어버린다. 어젯밤에도 분명히 다 헹궈서 넣고 식기세척기를 돌렸건만 닦은 듯 안 닦은 듯 깔끔과는 거리가 먼 상태였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유리의 청량감을 나도 한 번쯤 맛보고 싶건만 그것은 CF장면의 독점이란 말이가. 대한민국의 대단한 기술력이 우리 집만 쏙 빼놓고 지나친 듯 그 식기세척기는 영 꽝이다. 내가 그릇을 체크하는 것을 보고는 남편이 물었다.
“식기세척기의 문제점을 파악해야지. 세제 양을 조절해 봤어?”
“물론”
“그럼 세제 종류를 바꿔보면 어때?”
“해봤지. 비슷해.”
“근데 그거 시간 기능도 있지 않아? 조절해 보자.”
“벌써 다 해봤지. 에이, 그냥 냅 둬. 쟤는 원래 저런 애야. 자꾸 생각하면 피곤해.”
“상황을 개선하려면 노력해야지. 노력하면 바꿀 수 있어.”
남편은 상당히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방향을 제안했다. 하지만 나는 머릿속으로는 인정하면서도 입으로는 그에 반(反)하는 답을 하고 있었다.
남편 말은 다 맞았다. 이집트 문명도 나일강의 범람에 굴하지 않고 둑을 쌓은 사람들이 있어서 완성됐고, 세계적인 자산가들의 성공신화도 고난을 극복한 노력 덕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니 이놈의 식기세척기도 나를 힘들게 하는 일종의 도전적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부단히 대처한다면, 그러니까 ‘응전’에 따라 다른 결과는 도출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왜 남편의 지극히 모범적이고 훌륭한 견해에 순순히 동의할 수 없을까. 내가 삐딱선을 탄 것은 태생적인 것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도 아니다. 오랫동안 도전과 응전을 지지하는 입장이었고 노력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도 천진난만하지도 않았다.
이 사소한 식기세척기를 놓고 내가 행한 일과 그 결과를 보라. 노력했지만 말짱 도루묵이었다. 그렇다고 재도전해 보자니 피곤했다. 큰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더라도 덤벼보겠지만 이건 아니었다. 더이상 쓴맛은 일찌감치 사양하는 것, ‘그냥 그러려니’하고 한걸음 물러서는 것이 적절한 응전인 듯했다. 또한 성공에 대한 기대를 줄인다면 같은 노력을 하고 실패를 하더라도 상처도 덜 받는다. 문제를 해결할 만한 가장 확실한 방안은 기계를 통째로 바꾸는 것이겠지만 큰돈을 들이고 싶을 만큼 개선을 희망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남편에게 던진 나의 ‘냅 둬’라는 한마디는 노력을 포기하기보다는 일단 현재를 수용한 후 노력의 종류를 달리 고안하겠다는 의미도 있다. 어찌 보면 응전 범위의 확장이다.
내가 진작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았다면 어땠을까. 계획대로 노력대로 되지 않는다고 속 터져 할 일도, 실패를 반복하는 우를 범하지도 않았을 텐데. ‘1+1=2’라는 수학 공식을 세상사에 들이대면서 ‘노력과 기대는 성공’이어야 하는데 왜 아니냐며 때로는 세상을 원망하고 때로는 나를 자책했다. 그렇게 내 머릿속에서 세상을 재단하니 나만 힘들어졌다. 노력해도 안 된다면 다른 길을 찾거나 내버려 두고 편히 쉬는 것도 괜찮았는데. 에너지를 충전한다면 더 좋은 일을 생각해낼 수 있으니 말이다. 심신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 ‘1+1=5’가 돼도 ‘1+1=-3’이 되더라도 성내거나 노여워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거시적인 응전을 궁리해 보는 것, 이것이 인생을 잘 사는 법인 것 같다.
고무장갑을 끼고 수도꼭지를 틀었다. 얼룩진 유리컵들 위로 수돗물이 기세등등하게 쏟아졌다. 손가락이 물방울을 몇 번 튕기고 나면 이 유리컵도 반짝이는 광명을 되찾을 것이다. 가장 확실하고 실패 없는 방법이다. 앞으로도 나는 여러 인생의 문제들을 맞닥뜨리겠지만, 과거처럼 아등바등하지 말고 여유롭게 폭넓고 다양하게 상황을 보자고 생각한다. 한걸음 물러선 나의 응전, 일단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다. 물소리 끝에 한 소리가 들렸다. 뽀드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