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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의마음 Dec 23. 2024

지금이 좋사오니

 

‘나이 많다 생각하시는 지금, 꿈을 가지고 도전해 보세요.’     


인터넷 카페에 꿈에 관한 글이 있었다. 이 말을 시작으로, 마흔을 넘겨 새 일을 시작하고 성공한 사람들을 소개했는데. 피겨 스케이팅 선수였다가 40대에 의상 디자이너로 새 삶을 시작한 '베라왕'과 뒤늦게 의대에 입학해 60세에 레지던트 과정을 밟게 된 어떤 의사를 예로 들었다.


댓글이 많이 달려 있었다. ‘놀랍습니다. 멋져요.’를 비롯, ‘아무것도 실천 못하는 나는 부끄러워지네요.’ ‘늦은 나이라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의욕 부족이네요.’ 등등 감탄과 반성과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이 대부분이었다. 꿈을 좋아하고 동경하는 이들이 참 많았다.     


못 이룬 꿈을 향해 거침없이 도전장을 내밀고 성공한 것은 대단하지만, 솔직히 그 예시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성공을 거두어야만 꿈을 이루었다고 말하는 듯해서다. 남들이 우러러보며 박수치는 일뿐 아니라 보통의 일도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라면 꿈일 테다. 좀 더 소박한 꿈을 예로 들었다면, 대단한 직업 말고 개인의 만족감에 더 초점을 둔 예였다면 어땠을까.       


학생 때였다. 《갈매기의 꿈》의 주인공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에 엄청 감동했었다.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높은 하늘을 나는  갈매기는 얼마나 멋진가.  그 책에 나오는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말은 어찌나 설레던지 주문처럼 외우며 시험공부를 했던 기억도 있다. 그 시절 입시학원에서 나눠주는 전단지에는 무슨 약속이나 한 듯 이 말이 있었으니, 모두가 높은 하늘을 날기를 꿈꿨다는 말일 테지.

   

하지만 지금은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 그 도 감동스럽지 않다. 그 수준에 달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피 터지게 노력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간의 피로감 탓에 경치를 즐길 여유란 없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 갈매기는 혼자서 비행연습만 했으니 친구가 없었다. 외롭지 않았을까. 꿈과 이상을 위해 노력했고 성취했지만, 그것은 그 분야에서의 성공일 뿐 다른 것은 얻지 못했다. 적당한 높이에서 동료들과 떼 지어 물고기를 잡아먹으사는 갈매기 쪽이 더 즐거울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꿈이 지니고 있는 함정도 기억해야 한다. 세상일이 어디 마음먹은 대로만 되는가. 열심히 해도 실패할 수 있고,  그 실패로 인해 세상과 자신을 원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스무 살의 청춘은 넘어져도 일어설 수 있지만, 마흔이 넘었다면 미래를 도모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흔히들 백세 시대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해 마흔은 육체와 정신의 노화를 무시할 수는 없는 나이다. 과로사나 병사가 남의 일만은 아닌 것이다. 마흔쯤 되면 자기 분야에서 경력이 쌓였을 텐데 그냥 가던 길 가는 게 낫지 않을까.     


댓글도 참 그랬다. 감동, 찬사는 인정하지만 왜 그리 자신의 현재를 부끄러워하는지. 남들과의 비교의식, 자신에 대한 열등감이 작용한 듯했다. 정말 좋아서 자기 일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따박따박 입금되는 쥐꼬리만 한 월급을 위해 노동하는 이들도 있다. 아니, 더 많을 테다. 하지만 그 월급으로 친구와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생활을 꾸려나간다면 분명히 가치가 있다. 왜 그것을 부끄러워 하나.     


현재를 반성하고 도전해야만 열심히 사는 삶이라고, 누가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공연한 자기반성은 현재에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망칠 뿐이다. 멀고 높은 꿈보다는 ‘나는 잘하고 있어!’라고 자부심을 갖고 지금은 사는 게 더 좋아 보인다. 자신이 찌그러져 보이기 시작하면 인생은 재미없어진다. 정말 게으른 인생이라면 예외겠지만. 절대적인 궁핍이 아니라면 모든 것은 가치를 부여하기 나름이다. 먼 꿈보다 현재를 내 꿈이라 믿는 것이 오히려 멋지다. 꿈 권하는 이들에게 나도 댓글을 달았다.  


“지금을 좋다 하며 고이 늙으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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