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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의마음 Jun 09. 2023

껌보다는 호들갑이 좋겠네요

선배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웬만하면 연락이 없는, 무소식이 희소식인 사람인데. 역시 뭔가 일이 있었다. 선배는 유방암이라고 했다. 10년 전 유방암으로 수술을 받은 이후로, 연락이 없다가도 그 병에 걸리면 다들 내게 전화를 했다. 나는 동병상련의 위로를 갖춘 신빙성 있는 참고자료였다. 희미한 기억 사이에도 도움될 만한 귀중한 자료가 있는 그런. 


처음 검사를 한 곳은 동네 산부인과였다. 그곳에서는 토요일 오후, 내게 미리 전화를 주었다. "죄송하지만 암입니다."라고 말하는 간호사는 엄숙하고 낮은 목소리로 떨고 있었고, 그 말을 들은 나는 바닥으로 꺼지듯 주저앉았었다. 40대를 조금 넘기고 받은 그 선고는 슬픔과 분노로 다가왔었다.  다른 병치레를 드디어 마치고 새롭게 인생을 리셋하려고 노력하던 시기라 더했다. 패자부활전은 없었다.  주말을 울며 보내고, 월요일 아침에 병원을 가서도 한참을 울었다. 선생님께 암 수술과 치료에 대한 얘기를 들었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빨갛게 부은 눈을 하고는 사진을 찍었다.  수술에 호르몬치료에 팍싹 늙어버릴 내 미래가 다가오기 전에 하루라도 젊은 내 모습을 남기고 싶었으니까.


언니는 질문이 많았고, 나는 검색도 해가며 아는 대로 정보를 주었다. 언니는 심각한 분위기였는데, 이미 맘모톰도 했고 0.8센치라는 사이즈는 심각할 일이 아니었다. 언니는 육체적 고통을 물었지만, 그 역시 가슴 졸일 일이 아니었다. 초기라면 전이가 되지 않았을 테니 항암도 없고, 방사선이야 당장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니까. 암이라는 게 꺼림직하지만 사실 지방을 조금 떼어내는 것이 아닌가. 10년 전 나는 언니보다 더 벌벌 떨었지만 지나보니, 다른 질병에 비하면 유방암 1기쯤은 껌이었다.


남의 병이라고 가볍게 보는 것도 아니고, 내가 병에 대해 담대해진 것도 아니다. 10년 간 혈육의 장례식도 치뤘고, 가족의 질병을 지켜보고 있으며, 나 또한 유방암 치료는 물론 뼈를 깍는 수술도 하면서 부작용으로 큰 고생을 했다. 고통에 대해 그 종류와 깊이를 달리하며 그저 다양한 체험 중이랄까. 체험이란 처한 상황에 대해 비교를 가능케한다. 


우연히도 언니는 10년 전 나와 똑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수술을 한단다. 언니는 자기도 나처럼 예후가 좋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도 그러길 바란다. 하지만 유방암쯤은 껌이야, 그 말은 하지 않았음 좋겠다. 사는 동안 최고의 고통이었다고 기억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언니는 화사했던 대학원 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언니를 생각하면 어딘가 깊히 묻혀 있던 그때의 기억이 툭툭 튀어나온다. 산 위에 있던 도서관으로 가는 길, 발목을 삐끗했고 의대생 친구에게 어떻게 하냐고 칭얼대듯 전화를 했었다. 며칠 지나면 나을, 그야말로 껌도 안 되는 먼지의 먼지 수준이었다.  친구는 반창고를 붙여 고정을 시키라고, 평소에 발목 강화 운동을 하라고 잔소리, 아니 처방을 내렸다.  


완전 호들갑이던 나는 어디 가고, 어쩌다 암과 껌을 함께 말하는 이리도 차분해 보이는 사람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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