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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의마음 Aug 29. 2023

괜찮아요. 돈 많아요~

대출 안내 전화를 거절한 후 느끼는 이 다양한 감정은 뭐람?

click click!! 

앞으로 두 달 간의 일용할 양식을 마련하려면 손이 바삐 움직여야만 했다. 문화센터 등록일. 어떤 강의를 들을까. 마음이 허전하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면 뭔가 배워야 한다. 뭐가 좋을까. 심사숙고 하되 잽싸게 실수 없이 잘 해야 했다. 어젯밤 화면을 띄워놓고 다시 로그인을 안해서 이미 마음으로 찜했던 강의는 날아가버린 상태이니 더 긴장됐다. 

휴~ 이제 마지막 하나만 하면 된다. 조금 안도하고 있는데...


아까부터 계속 전화가 울린다. 왜 저리 간절히 나를 찾는 것일까. 카드회사 고객센터란다. 뭐지?  계속 안 받아서 문제가 생겼나.(내 전화는 대부분 묵음이다.)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 님이신가요?" 

빨리 말할 것이지, 여자의 톤은 낮고 신중한 느림 모드다. 뭔가 중요하다는 듯 뜸을 들이며 용건을 말한다.

"저 ***님, 이번에 저희 **카드에서 우수 회원님을 대상으로 대출...."

"아. 됐습...."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카드를 많이 쓰지도 않으니 우수회원도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어서,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듯 간곡히 강력히 말을 이어갔다. 

"5000만원 한도로 **% 저이자예요. 고객님 요즘 사정도 어려우실 텐데, 특별한 상품이니...."

그냥 끊고 싶었지만 상대방이 말을 하고 있으니 바로 끊기도 곤란했다. 귀가 얇은 나는 과연 이자가 몇 프로라는 것인지 흐릿했던 그 소리도 궁금해졌다.

"이자가 몇 프로인데요?" 

 "9%예요. 이 상품은..." 여자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됐습니다'라고 답하는 소리가 지워질 만큼 열심히.

"괜찮아요. 돈 많아요~"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더 이상 들을 이유도 없었고, 나는 마지막 수강신청 결제를 해야 했으니까. 또한 그녀가 앞서 말한 "사정도 어려우실 텐데"라는 말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전화를 끊고 나자, 후회가 됐다. "돈 많아요~"라고 뱉어버린 그 말. 대출 전화를 막기 위한 가장 빠른 적합한 방법이기는 했다. 또한 9%는 절대로 싼 이자가 아니었니까. 하지만 돈에 민감한 시절에 함부로 발설할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서민 주제에 어찌 이 말을 할 수 있을까.  물론 몇 십 억을 넘나드는 부동산을 생각하면 5천은 껌이지만. 


나의 말이 한없이 경망스럽게 느껴졌다. 욕을 바가지로 먹겠지, 싶었다. 어차피 나는 그 상품을 택하지 않을 테고 그녀 입장에서 보자면 시간과 노력을 절약해 준 것이지만, 그래도 그런 말은 하는 게 아니었다. 공연히 잘난 척하는 것 같지 않나. 그녀 역시 감정 노동자일 텐데. 콜센터 직원이 고임금일 리는 없을 테다.  미안했다. 어쩔까나..... 내가 고객센터에 전화를 해 그녀를 찾아 사과할 수도 없었고, 혹시라도 그렇게 한다면 나를 살짝 돌은@.@ 자로 생각할 테다.


바쁘지만 않았어도 1,2초 더 말하며 부드럽게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는 못해도 '수고하세요' 쯤은 마지막 말로 남길 수도 있었을 테다.    

이 아침, 분발한 덕에 9월, 10월 두 달간 내 머리와 마음을 채울 양식을 마련하긴 했지만, 그녀의 양식은 갉아먹은 듯한 기분...




이 글을 다 쓰고 한번 읽어봤다. 미안한 심정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진짜 잘못한 것 같기도 하고, 요즘 시대에 쓸데없이 착하게(또는 물렁하게, 멍청하게) 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가식을 떤 것이라는 말도 될 것 같고. 또 그렇다면 이 글을 보는 누군가는 닭살이 돋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안 읽힐 확률이 훨씬 더 높지만. 그런 점에서는 안심이다^^  음.. 진짜 안심일까? ㅠ.ㅠ)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공연히 마음에 걸릴 일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것!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예의와 배려를 잊어버리면 항상 곤란해진다. 남보다도 나를 위해서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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