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것을 위하여

by 그날의마음

화요일이었다. 봄이 시작된 지가 언제인데 겨울이 돌아왔고, 반갑기도 하고 안 반갑기도 한 눈이 내렸다. 집순이로 집안에 콕 박혀 있는 나는 눈이 얼마나 쌓이는지 베란다를 들락날락했는데.. 나로서는 분명히 반가운 서설이었다.


노래를 들었다. 가곡 김효근의 '눈'이다. 노래란 것을 까무룩 잊고 있었는데, 작년 가을 우연히 성악수업을 들었다. 학생 삼십 명에 겨우 5회 수업. 그것도 4회 수업을 하고는 마지막은 발표회였으니 뭘 그리 배웠으랴 싶지만, 노래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더 늙기 전에, 목이 완전히 가기 전에 노래를 해보자!'


창밖의 '눈'을 보며 노래 '눈'을 듣고 따라 부르고. 역시나 어려운 곡이었다. 원키보다 하나 낮춰서 불렀더니 그나마 좀 나았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원키가 아름다웠다. "어차피 전공도 아닌데 못해도 괜찮지, 예쁜 거 하자." 전공이 아니라는 것은, 이런 좋은 점이 있었다. 연습을 하고 녹음도 해봤다. 세상 참 좋아졌지. 유튭에 노래 반주가 있으니 핸드폰과 목소리, 그리고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도 내 목소리, 내 노래소리를 들을 수 있다!


겁도 없이 원키로 부른 노래를 친구에게 보냈다. 30년도 넘은 친구니 이쯤은 봐주겠지. 친구는 "야~ 진짜 너야??? 깜짝 놀랐네. 연주회 해야겠네" 라고 친절한 톡을 보내주었다. 고마웠다. 친구는 절대적인 T. 허튼 소리 안 하고, 틀렸다 싶으면 편들기 같은 거 없는 타입인데 내가 갱년기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음을 아는지 부드럽고 따뜻하게 대응해 주었다.


사실 나도 귀가 있는데, 내 소리를 모를 리가 있나.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어도 음악은 좋아해서, 플륫과 바이올린을 배웠고, 한동안 클래식 매니아로 글도 썼었다. 어디는 샾, 어디는 플랫, 음정이 자유분방하게 널 뛰고 박자를 놓친 부분도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아마도 친구는 지하철을 타고 있거나 일찌감치 가는귀를 먹었으려나.^^


많이 아쉬웠다. 호흡이 짧아 숨이 끊어지고 높은 음이 잘 안 나고, 금방 목이 갈라지고 가래가 생기고. 조금 앞서 체험해 보는 '노인의 세계'였다. 젊을 때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합창반에서 하루종일 특훈을 해도, 계속 높은 소리를 내도 소리는 지치지 않았는데. 그 시절엔 평생 그럴 줄만 알았었다. 그래서 귀하게 여길 줄도 몰랐는데. 어디 가서 노래를 부를 일도 없고, 전공도 아니니 밥벌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나의 일부라고만 생각했었다. 어리석게도.


과거란 아무리 아쉬워해도 아무리 돌이키려해도 소용없는 일. 이미 흘러가버린 물에 어찌 다시 발을 담글 수 있으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 현재의 내가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며 돌보는 일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지나간 과거가 될 테고, 나는 아마도 그리워할 테지. 더 늦기 전에, 완전히 나의 소리가 맛이 가기 전에 많이 불러보자고 그 흔적이라도 남겨두자고 생각해 본다.


"묻지 마라, 왜냐고~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 둬야지~" 조용필의 오래된 그 노래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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