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강의를 듣는다. 세상이 많이 변해서인지 'AI를 이용한 ~~~'란 종류의 강의들이 작년에 비해 많이 개설된 것 같다. 이번에 들은 짧은 강의도 그랬다. ChatGPT를 이용해 책을 만든다나. 도대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들어나보자! 하며 갔는데.
역시 강사님은 AI전도사였다. ChatGPT를 이용하면 세상 모를 것이 없고, suno, canva, imagen 등등 합세하면 못할 일이 없어 보였다. 그 신념과 확신에 찬 목소리. 생기있었다.
"글을 못 써도 chatGPT에게 쓰라고 시키세요. 시도 써줘요. 에세이도 써줘요.." 라는데
보고서 종류는 그렇다 쳐도, 시란 무엇인가? 에세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담아 글로써 표현한 것,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소통할 수 있는 기호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AI에게 시킬 것이면 왜 시와 에세이를 쓰지? 나에겐 의문이었다.
강사는 말했다. 자신의 명령어에 반응해 AI가 제안을 했고, 그에 대해 취사선택했으니 자신의 것이라고. 대신 책을 낼 때는 GPT와 합작임을 밝히란다. 자신의 감성을 대변하면서, 더 멋지게 표현했기에 너무 만족스럽다는 느낌이 팡팡 풍겼다. 말재주, 글재주가 전혀 없는 사람이라도 AI와의 협업으로 한을 풀 수 있다는 의미인가. 자신은 이미 GPT에게 부탁해서 10페이지인지 20페이지인지 전자책 에세이를 냈다며 자랑도 했다. 책이 한두 권이 아니란다. 한권에 얼마고 인세도 들어온다나~@.@ 책이란 게 그렇게 간단한 것이던가. 지금도 누군가는 책 한 권 쓰겠다고 책상 앞에서 끙끙대고 있을 텐데.
기분이 참... 별달리 노력하지 않고 성과를 얻는다는 것은, 일종의 사기? 란 느낌도 들었는데. 누군가의 눈에는 내 태도가 요즘 세상에 걸맞지 않게 고루한 것일 테지. 세상과 발맞춰나가지 못한 채 나이먹다가 이미 늙어버린 사람.ㅠㅠ 그 변화에 당황하고 허둥대는 사람ㅠㅠ
그림도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만들어줘'라는 말 한마디에, 명령어만 적당히 넣으면 5분도 안 돼서 멋진 그림과 디자인과 음악을 생성해내는데.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사람 같은 목소리로 노래까지 해댄다. 그걸 보면서 재미있다거나 편하다거나 기쁘다거나.. 나는 이런 감상보다는 '경악'이란 게 바로 이거로군! 했다. 어떤 친구는 몇 달을 고민하며 그림을 그리고, 또 어떤 친구는 어릴 때부터 날마다 악기를 연습해 지금에 이르렀는데. 그애들은 한평생 그 짓만 했는데. 얘들아, 니들 그럴 필요가 있었니~?
아찔하게 스쳐가는 나의 생각과는 별개로, 강사는 또 말했다.
"AI를 이용해 디자인을 해서 제가 상을 받았지 뭐예요~~호!호!"
그래, 너는 참 시대를 잘 읽어낸 머리 좋은 사람이구나.. 하면서 칭찬을 보냈다. 2025년에는 저렇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이지.
이러다가.
인간의 생각과 감성이 골고루 결합되어야 할 영역에서도 A가 활약한다면, 그게 정말 가치가 있을까. 인간은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새로운 기능을 수업한 후 밀려오는 허전함. 나는 진정한 가치를 찾는 것일까. 혹은 노동과 노력을 너무 높이 평가하는 것일까.
강의실을 떠나, 차분차분. 마음을 가다듬고 건물 지하에 있는 다이소로 내려갔다.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하면 그 가치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눈앞에 여러 물건들 중 청소도구와 인테리어 시트와 과자를 집어들었다. 후다닥, 집으로 달려가 그간 찌든 가스대 주변의 기름 때를 박박 닦고, 테이블도 깨끗이 치우고, 인테리어 시트를 붙였다. 기름이 튄 부분도 가려졌고, 낡은 테이블 상판도 예쁘게 메이크업을 했다. 그리곤 과자를 먹었다. 바삭, 소리의 울림만큼이나 맛있었다.
그날, 나는 그야말로 AI는 할 수 없는, 인간만이 해낼 수 있는 엄청나고 대단한 일을 한 것이었다. 청소기와 식세기가 있다 해도 청소에는 인간의 사소한 손길이 꼭 필요하고, 먹고 맛보는 일야말로 AI가 생명체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절대 고유의 영역이다. 인간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됐다고나 할까. AI 글쓰기 수업을 통해 얻게 된 최고의 성과였다.
AI는 AI의 일을 할 테고, 나는 나의 일을 할 테고. 어쩌다 접점에 이르렀을 때에는 AI를 잘 이용해 먹을 수 있게 애쓰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겠지. 이미 이렇게 돼버린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