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에 이어, 오늘도 도서관에 앉아있다. 50대 아줌마가 무슨 공부냐고? 아니, 공부는 아니고 노트북을 들고 앉아 기사도 검색하고 이렇게 브런치에 글도 올린다.(공부할 수도 있지만 나는 아니라는 말임.)
나는 주부. 회사에 다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짬이 안 난다. 아침에 일어나 밥해 먹고 밥치우고 청소하고 슈퍼에 다녀오고 산책 좀 하면. 또 밥해먹고 밥 치우고. 이렇게 하루해가 후딱 간다. 어디 가서 강의라도 하나 들으려면 그날은 집안일을 안 하니까 다음날에는 집안일이 2배가 된다. 그러니 회사 다니면서 브런치에 글 쓰시는 분들~~ 너무 대단하시다. 박수!!
그렇다면 오늘의 나는 글쓰기에 필이 꽂힌 것일까. 음, 써보자는 마음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심연 어딘가에 박혀있다가 어쩌다 한번 폴짝 튀어나올 뿐이었지.
실은,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갱년기를 잘 극복하려는 노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내가 도서관에 앉아있다는 것은 집을 비운다는 뜻. 아마도 남편은 "드디어 나갔다~ 야호!" 하며 혼자서 신나게 피아노를 칠 것이다. 남편의 피아노 사랑은 그 역사가 참으로 길다. 초딩 때는 피아노 학원을 건성으로 다녔으나 대학에 입학해서부터 푹 빠졌다나. 바하, 차이콥스키, 리스트, 드뷔시 등등. 특히 쇼팽 매니아다. 전문가가 아니니 틀리는 부분도 많지만, 그래도 1년에 몇 번, 쉬운 영화음악이나 두드리는 나에 비하면 함부로 범접하기 어려운 레벨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피아노 소리가 시끄러워졌다.
이럴 때는 디지탈피아노가 해결책이라고?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샀다. 그러나... 디지탈피아노와 어쿠스틱피아노 소리는 진짜 다르다. 건반을 하나만 눌러봐도 손가락의 터치감과 소리의 깊이가 천지차다. 우리집 디지탈피아노도 상급품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쿠스틱의 가슴을 파고드는 울림을 따라올 수 없다. 피아노 초보인 나도 소리의 차이를 알기에 가끔은 집안 문을 꼭꼭 닫고 어쿠스틱 피아노를 칠 정도다. 그러니 남편 마음은 오죽하랴. 그도 피아노를 치면서 손가락의 좋은 감각을 느끼고 좋은 소리를 듣고 그렇게 마음의 기쁨과 위로를 얻어야할 테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귀에서 피나기 전에 도망치는 것이 상책! 피아노가 싫다고 남편과 싸울 일도 아니고, 조용한 집에서 살고 싶다고 남편을 쫓아낼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꽃가루 날리는 봄볕을 맞으며 거리를 쏘다닐 수도 없다.(나는 꽃가루알러지가 있다.ㅜㅜ)
오래전, '안 되면 바꿔야죠!'라는 광고 카피가 있었다. 어떤 물건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말이 너무나 강렬하게 마음에 와닿았고, 젊은 시절에는 그렇게 살고자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세상에는 바꿀 수 없는 것도 많고, 남이든 일이든 뭔가 바꾸려다가 오히려 역효과가 날 때도 있음을 말이다. 제일 쉬운 것은 나를 바꾸는 것. 현재를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편이 좋다. '편하다'라고 바꿔 말할 수도 있겠다. 세월 따라, 과거에 비해 도전정신은 현격히 떨어졌으나 현실적 적응력과 응용력, 그리고 상생능력은 향상됐다고나 할까.
결혼을 하고 오래 같이 살아왔지만, 갱년기 탓인지 지겨워지는 것도 부딫치는 것도 참 많은 요즘. 주변에서 혼자 살고 싶다고 이혼하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도 종종 보게 된다. 남편의 뒤꼭지만 봐도 열불이 난다나. 어쩌면 피아노를 시작으로 그간 참고 참아온 묵은 화가 솟구쳐 오른다면 나 역시 그들이 대열에 합류할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피아노는 사소한 일부일 테다.)
그래도 나는 참 다행이다. 현장을 피해 도망가려는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을 잘 뒷받침해 주는 도서관이 있고, 그 시간을 나름 값어치 있게 바꾸어 주는 글쓰기가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