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걸어서 15분. 새 도서관이 생겼다. 새롭게 오픈한 이곳은 주변에 나무가 많고 깔끔한 건물에 책도 새것, 의자도 새것에 건물 바닥도 반지르르하다. 천정에 매립등도 예쁘게 박혀있어서 호텔 로비나 카페 같다. 시민독자인 내가 융숭한 대접을 받는 기분. 짧은 산책 겸 도서관까지 걸어가 책을 보며 잠시 쉬다가 또다시 산책 겸 집으로 돌아가는 일. 꽤 마음에 드는 건강한 루틴이다.
그날 책장에서 발견한 책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 회고록 형식의 에세이. 교수이자 평론가인 강인숙 님의 <글로 지은 집>이었다. 좀 두꺼운 그 책을 머뭇거림 없이 꺼내들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인 궁금증 때문이었다. 강인숙 님은 이어령 선생님의 아내분이시다. 이 시대의 최고지성인 그분들, 머나먼 별세계 같은 그분들은 어떻게 사셨을까. 목차를 보니 책 제목처럼 살던 집과 동네를 기준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가난한 신혼 단칸방 시절 전세 사기를 당할 뻔한 얘기, 방 2개 있는 전셋집을 얻었을 때 서재가 생겨서 남편도 본인도 기뻤다는 부분에서는 별로 기대하지 못했던 소시민적인 면모가 느껴졌다. 그분들도 젊은 시절에는 가난했고, 물론 60년대의 절대적 빈곤과는 차원이 다르겠지만, 먹고사는 일에 고민한 흔적이 있었다는 것도 신기했다.
그분들의 가족사, 지인들인 유명 문인의 이야기를 읽다가 그 시절의 일반적인 생활상, 가치관 같은 데에도 관심이 생겼다. 그러다보니 그 책에는 등장도 하지 않는 내 가족과 친척이 떠올랐다. 1960년, 70년대의 삶이 좀더 생동감 있게 드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고나 할까. 그런 시절이라면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렇게 생각했겠구나,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그렇게 행동했겠구나 하면서 내가 기억할 수 없는 시대를 짐작해 보기도 했다. 한참 꼬마였던 내가 보았던 세상의 또 다른 면을 보며 이리저리 퍼즐을 맞추듯 말이다.
책을 덮고 난 후 하나의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책 전체를 완독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목차를 보고 전체를 대략 훑어보고 그 중에 마음에 드는 챕터를 읽고. 꼼꼼한 독서는 아니지만, 이런 띄엄띄엄 독서법이 요즘 나의 책읽기 방식이다. 세상에 책은 널렸고 나의 시간과 기억력은 한정적이니까.)
"에세이(수필. 이 둘은 엄밀히 말하자면 다르다지만 일반적인 사용에 준한다)란 무엇인가"
시도 소설도 희곡도 아닌 것이 문학이란 이름을 달고 나온다면, 그 에세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평소 자주 생각한 질문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시절, 붓 가는 대로 써내려가는 글이 수필(그 시절 교과서에는 '에세이'란 영어는 등장하지 않았기에 이 단어를 사용함)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써본 사람은 알 것이다. 붓이 어디로 갈지 그 방향 잡은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먹물의 농도를 맞추는 것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말이다. 사실에 기반한 수필인 만큼 글 전체를 놓고 시처럼 은유를 사용할 수도 없고 소설처럼 상상력으로 흥미롭게 풀어낼 수도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든 풀리지 않은 일이나 얽히고 섥힌 관계들이 있을 테지만, 등장 인물이 모두 실제 인물이다 보니 솔직히 풀어놓기도 힘들다. 좋은 점만 말하거나 두루뭉술하게 서술하는 것이 보통인 듯하다. 만약 사실이든 감정이든 있는 그대로를 다 오픈해버리면 두고두고 누가 내 글을 보면 어떡하나, 가슴졸이는 순간을 맞이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런 장르적 어려움 때문에 에세이는 조심스럽다. 딱히 흥미로운 소재를 가지고 접근하지 않는다면, 남들과 적당히 비슷한 글이 되어버릴 것 같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웬만하면 자신과 자신의 피붙이나 친구를 좋은 사람으로 표현하고 싶어하고, 남들에게 욕 먹고 싶어하지 않으니까.
<글로 지은 집>이란 책을 펼 때는 나도 이렇게 하드커버로 된 번듯한 에세이를 써보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지만, 이런 장르적 한계점을 생각하면서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솔직하면서도 흥미롭고 재미있는 에세이란 누구나 덤빌 수 있는 게 아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