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지옥인 베이징의 중고등학교
6월 말에 종카오(中考, 중국 고입 시험)를 앞두고 있는 중학교 3학년 둘째의 하루 일과다. 종카오에서 고득점을 얻어야만 베이징시의 명문고에 진학할 수 있으므로 중학교 3학년이 되면 학교에서 아이들을 그야말로 달달 볶는다. 1학기 때 1학기 진도는 물론이고 2학기 진도도 최대한 빼놓으려고 해서 쉬는 시간까지 수업이 연장되는 것은 예사이고, 진도를 맞추기 위해 점심시간에 보충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2학기가 되면 중학교 3년 전 과정에 대한 복습에 복습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
중학교 1, 2학년 때도 수업과 숙제와 시험이 타이트하게 진행되며 하루 일과가 빠듯하지만, 중학교 3학년 때 1년 동안의 수업과 숙제를 통해 무한 반복되는 복습의 총량은 실로 어마어마해서 학교에서 주어진 미션을 소화하며 충실히 따라가기만 하면 이 시기를 거치면서 실력이 일취월장하게 된다. 그러나 말이 쉽지, 미션 완수가 쉬울 리 없으니 아이나 부모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학교에서는 방과 후에도 매일 저녁 8시까지 자율학습을 권장하는데 강제 사항이 아니지만 모든 아이들이 당연하게 따른다. 물론 부모들의 동의 하에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자율학습을 하지 않는 학생은 반에서 우리 아이가 유일하다. 담임선생님께서 그 시간에 과목별 담당 선생님들의 보충수업이 진행되기도 하니까 자율학습을 하는 것이 어떠냐 따로 연락을 주셨지만, ‘아이가 한참 예민한 시기인데 저녁식사조차 함께 하지 않으면 하루에 가족끼리 얼굴 마주하고 얘기할 시간이 없다’고 완곡하게 말씀드리고 자율학습을 패스했다.
그래도 둘째의 경우는 나은 편이다. 연년생이라 작년에 종카오를 먼저 치른 큰아이 때는 중학교 3학년 2학기 내내 토요일에도 등교해서 정상 수업을 했었다.
아이들이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중간고사(期中考试)와 기말고사(期末考试)를 비롯해 매달 치르는 월말고사(月考)에 과목별로 일주일치 내용을 테스트하는 조우칭(周清)까지 더해져 시험이 일상이 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정작 힘든 것은 시험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숙제 지옥이다. 과목별로 숙제가 없는 날이 없고 분량 또한 많아서 저녁식사 하자마자 바로 숙제를 시작해도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린다. 중간중간 아이들 방을 들여다보면서 ‘뭐하고 있어?’ 물으면 ‘숙제요~’ 라고 답해서 ‘아직도? 중요하지 않은 숙제는 건너뛰어~’ 라고 얘기하곤 하는데, 정확히 숙제를 어떤 식으로 내는지 모르겠지만 두 아이의 반응은 비슷하다. 공부를 해야만 할 수 있는 숙제라서 오래 걸린다고, 그러니까 아이들 얘기로는 숙제하는 게 곧 공부라는 뜻이다.
그리고 숙제를 안 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숙제라는 게 안내면 한번 혼나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니다. 선생님들은 제출기한을 재차 미뤄주는 방식으로 숙제 제출을 끊임없이 요구하기 때문에 제때 하지 않으면 해야 할 숙제들이 누적되어 결국 더 힘들어진다. 심지어 방학숙제도 그렇다. 과목별 숙제와 활동 과제 등으로 분량 자체가 많은데, 개학과 동시에 숙제를 내지 않을 경우 그냥 면제되는 것이 아니라 며칠 시간을 주고 완성해서 제출하라고 재촉한다. 때문에 중국학교에서 숙제라는 것은 안 하고 미루기보다는 빨리 해버리는 게 상책인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째라 식으로 숙제를 안 하는 친구들도 있긴 있다.
고등학교 1학년인 큰아이의 하루 일과도 둘째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나마 둘째는 자정 전후로 잠자리에 들지만, 숙제를 끝내고 좀 더 공부하는 큰아이는 새벽 1~2시는 되어야 눕는다. 두 딸아이 모두 주 5일 동안 온 힘을 다해 쳇바퀴를 돌리다가 주말이 되어서야 겨우 한 템포 쉬어간다. 그래 봐야 주말이든 공휴일이든 숙제 지옥을 벗어날 수는 없지만..
아이들의 일상이 이렇다 보니 학원을 보내는 건 엄두가 안 난다. 개인적으로는 기본적으로 학교에서 주어지는 학습량이 워낙 많기 때문에 학원 수업을 받지 않아도 될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다. 큰아이의 경우 중학교 때 수학학원을 보내봤는데 학원 숙제까지 겹쳐 아이가 너무 힘들어해서 두 달여 만에 그만두었다. 그 외에는 두 아이 모두 학원을 다닌 경험이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는 거실에 큰 책상을 두고 수학과 영어를 내가 가르치면서 함께 예습하고 함께 공부하며 숙제를 봐줬었고, 그 이후로는 내가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서 각자 알아서 공부하고 있다. 두 아이가 외부의 도움을 받는 것은 매일 저녁식사 후 30분씩 외국인 선생님과 화상으로 대화하는 영어 회화 수업이 전부다.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함께 공부하던 것이 습관이 되고 여기에 빡센 학교 공부가 더해지면서 아이들 나름대로 자신만의 공부 스타일을 만들어온 것 같다.
그렇다고 중국 친구들도 다 학원을 안 다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중국 부모들의 교육열도 한국 못지않아서 같은 반 친구들 중에는 학교 끝나고 밤늦게 학원에 가거나 아니면 주말을 학원에서 보내는 경우도 많다. 그 친구들은 당연히 우리 아이들보다 더 촘촘하고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이 많다.
중국에서도 이런 학생들의 학업 부담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높은 사교육비 부담이 저출산의 원인으로 꼽히자(14억 인구의 중국도 저출산으로 인한 근미래 인구 감소를 걱정한다), 2021년 7월 강력한 사교육 금지 정책을 발표했다. 의무교육 단계(중국은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다)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중국어 영어 수학 등을 가르치는 사교육기관(문화예술 및 체육 제외)에 대한 신규 허가를 중단하고 기존 학원들은 심사를 거쳐 ‘비영리기구’로 등록하게 했는데, 실제 등록 허가를 내주지 않는 방식으로 사교육 시장 정리에 나선 것이다. 방학이나 휴일에도 학원 수업을 할 수 없으며, 사교육 컨텐츠 관련 광고도 사실상 금지되었다.
또 아이 숙제 때문에 부모까지 힘들다는 여론에 따라 초등학교 1~2학년은 숙제를 내줄 수 없고, 3~6학년은 60분 이하 완성, 중학교는 90분 이하 완성 가능한 숙제만 낼 수 있게 했다. 원칙적으로 숙제는 학생이 혼자 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학교에서 끝마칠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정책 자체가 획기적인 것이어서 지난해 여름 발표 당시에는 뭔가 대대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라 예상했으나 교육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초등학생을 둔 중국인 지인에게 물으니 초등학생들은 숙제량이 크게 줄고 시험에 대한 부담도 덜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중고생인 우리 아이들의 경우에는 글쎄.. 중학교에서의 변화는 큰아이 때 했던 토요일 정상수업이 없어진 대신 주 5일 저녁 자율학습이 생겼고, 성적을 통보할 때 석차를 표시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 고등학교에서는 월말고사가 없어지고 학기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만 본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큰 변화가 없다.
이번 조치에는 수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등교시간을 조정하는 내용도 있었지만, 선생님들은 지각처리만 안 할 뿐 예전처럼 일찍 다니라고 주의를 준다. 성적 통지에는 석차가 없지만 선생님들에게 개인 톡으로 문의하면 쉽게 가르쳐주며, 숙제 분량은 두 아이 모두 전혀 줄지 않았다. 학원을 다니던 친구들은 학원에 가지 않는 대신 집에서 온라인으로 대체해 학원 수업을 듣고 있으며, 연락처를 어떻게 알았는지 1대 1 과외교습도 가능하다는 학원들의 광고 전화가 하루에도 서너 차례 걸려온다.
시진핑 주석이 “학교가 교육을 책임져야 한다”고 지침을 내렸으니 언젠가는 변할 테고 그 변화의 속도도 조금씩 빨라지겠지만, 아직까지 일선에서는 큰 변화가 없다. 중학교는 여전히 고등학교 입시에, 고등학교는 대학 입시에 사활을 걸고 학생들을 채찍질하고 있으며, 주 5일 열심히 쳇바퀴를 돌려도 주말 하루의 쉼도 온전히 허락하지 않는 숙제 지옥이 학기 내내 이어지고 있다. 주말이면 주말이라고 연휴면 연휴라고 더 많은 숙제를 내주는 선생님들에게 엄마인 내가 화가 날 정도다.
일일 8시간 근무의 워라벨 시대에도 아이들의 하루는 30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
슬프게도.. 더 독해졌다.
베이징에서 초중고 모두 중국 로컬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이야기하기 위해 <김쟌김쏸은 중국학교에 다닙니다>라는 매거진을 시작했습니다. 베이징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경험으로 알게 된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는데, 계속 생각만 해오다 브런치를 통해 드디어 실행에 옮기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조양구(朝阳区) 왕징(望京) 지역은 베이징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모여사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로컬학교에 다니는 한국 아이들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보니 처음 왔을 때 로컬학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맨땅에 헤딩하듯 좌충우돌에 실수 연발이었습니다. 이제 그 긴장 백배의 시간들을 지나 두 딸아이가 벌써 9학년, 10학년이 되었고, 그동안 열심히 달려왔고 아직 달리고 있는 우리 가족의 경험담이 예전의 제가 그랬던 것처럼 중국 생활을 시작하려는 누군가에게는 현실적인 정보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왜 하필 별로 관심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은 중국의 로컬학교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할까.. 따가운 시선으로 보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기에 한 번쯤은 글의 의도를 설명하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