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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Jun 02. 2022

온라인 시험이 과연 클린할까?

중국학교에서 온라인 시험을 치러 보니..

이젠 그냥 풍토병이라 여기고 같이 살아가보자는 위드 코로나 시대에 ‘놉! 우린 절대 그럴 수 없어, 완벽히 박멸하고 말거야’ 라는 자세로 초지일관 제로 코로나를 외치고 있는 중국. 경제수도이자 이미 세계적인 도시로 손꼽히는 상하이를 우습게 보고 덜컥 봉쇄부터 했다가 예상치 못한 인민들의 반발에 놀란 탓인지, 수도 베이징에 대한 방역 정책은 그에 비해 점진적이었다.

그동안 확진자 발생률에 따라 구마다 봉쇄 및 방역 조치를 달리해왔는데,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조양구(朝阳区)는 그나마 한 달여 만에 재택이 풀리고 다시 정상 출근을 시작해서 정말 다행이다. 영업을 중단했던 음식점과 영화관, 쇼핑몰들도 순차적으로 다시 영업을 재개할 수 있다는 방침이 내려왔으니 곧 일상이 회복될 거라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 교육위원회 쪽은 감감무소식.. 아마도 모든 곳들이 정상화되고 가장 마지막에 풀리는 것이 아이들의 정상 등교일 거다.


이곳 베이징은 코로나 확산 초기였던 2020년 봄학기만 온라인으로 전환했고, 그 후 지금까지 정상적으로 학교생활을 해온 터라 이번 온라인 수업은 뜻밖의 조치였다. 솔직히 오미크론의 전파력과 증상의 경중을 따졌을 때 이걸 막고 제로를 실현하겠다는 것이 말이 되나? 그것도 이렇게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 갑작스런 남편의 재택근무와 아이들의 온라인 수업으로 그렇게 현실 부정에 빠졌던 나는 하루종일 주방을 벗어날 수 없는 생활에 현타가 왔다. 그래, 여긴 중국이잖아..


그래도 처음에는 길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번 주만 온라인이겠지’ 싶었고 그렇다면 새벽 별 보고 등교해서 저녁 달 보며 집에 돌아오는 아이들이 잠깐이라도 쉬어가며 체력을 보충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온라인 수업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정작 발등의 불이 된 것은 아이들의 시험이었다.

2년 전에도 온라인으로 시험을 치른 경험이 있긴 하지만, 그때는 두 아이가 중 1, 중 2 여서 별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었다. 당시 시험을 온라인으로 치른다는 얘기에 아이들의 반응은 ‘이런 식으로 시험 보면 컨닝하는 애들이 많을텐데..’ 하는 걱정이었고, 나는 ‘컨닝해서 점수만 높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그동안 공부한 걸 스스로 테스트한다고 생각해’ 라고 아주 심플하게 얘기했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더이상 그렇게 심플한 엄마일 수 없었다.


고등학생인 큰아이는 내신성적 관리에 중요한 중간고사였고 중국어•영어•수학을 제외한 나머지 과목들은 모두 상대평가로 원점수가 조정되기 때문에 함께 시험을 치르는 친구들의 점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중 3인 둘째는 종카오(中考, 중국 고입 시험)를 3주 앞두고 있는데, 이번 시험이 전체 응시생의 점수 분포와 석차가 나오는 마지막 모의고사였다. 중요도로 따지면 둘째의 종카오지만, 아무래도 더 신경이 쓰이는 쪽은 상대평가가 이루어지는 큰아이의 시험이었다. 과연 클린한 시험이 될 수 있을까 걱정스런 마음이 앞서는 게 사실이었다.


큰아이의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이 온라인 시험 시 카메라를 통해 보여지는 바른 자세에 대해 이렇게 시범을 보이셨다.


큰아이와 둘째의 온라인 시험은 동일한 절차로 진행되었다.

하루 전날, 담임선생님과 같은 반 친구들 모두가 동시 접속해서 카메라와 스피커 시스템을 점검하며 주의사항을 전달받고 모의 테스트 진행 - 시험 당일, 시험 시작 20분 전에 선생님이 단톡방에 시험지와 답안 작성지 파일 전송 - 각자 집에서 프린트 - 책상에 앉아서 카메라 세팅 및 준비 (이때 시험지를 볼 수는 있으나 답안 작성은 금지) - 카메라 앞에서 자세를 고정하고 시험 진행 - 시험 시간 내에 각자 작성한 답안지를 찍어서 미니 프로그램에 업로드.


두 아이 모두 3일간 시험을 치렀는데 얼떨결에 나도 함께 긴장하며 거실에서 대기했다. 아이들의 요청으로 거실에서 시험지를 프린트해서 가져다주기로 했는데 그럴 때마다 코 앞에 있는 애들 방을 나도 모르게 뛰어가게 되더라는.. (지금 생각해도 웃긴다) 아침 7시30분부터 스탠바이하고 있어야 하는 아이를 위해 속이 편안한 아침과 점심 메뉴를 고민하고, 시험 중일 때는 혹시나 방해될까 싶어 되도록 조용히 있다가 시간 맞춰 점심식사를 제공해야 했으며, 한 과목 한 과목 끝날 때마다 아이의 표정을 실시간으로 살펴야 했다.

정상적으로 학교에 다녔다면 아침 등굣길에 ‘침착하게 해~’ 한 마디 해서 보내고는 하루종일 잊고 지냈을텐데, 바로 눈앞에서 중요한 시험을 치르고 있으니 신경을 안 쓰려야 안 쓸 수가 없었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앞으로도 이런 생중계는 거절하고 싶다.  


(왼쪽) 시험 시작 20분 전에 시험지 파일을 보내주고, 답안지를 업로드할 미니 프로그램을 알려준다. (오른쪽) 수학시험이 끝난 후 수학선생님이 학부모들에게 보낸 메시지.


아무튼 시험은 다 끝이 났는데,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뒷말들이 나오는 모양이다.

- 시험 직전에 선생님이 두 학생의 뒷 배경이 같은 걸 이상하게 여기고 지적했으나 곧 시험 시작이라 그냥 넘어갔다.

- 시험 중간에 시험지 한 장이 누락됐다며 다시 프린트해오겠다고 잠시 책상을 비우는 학생을 막지 못했다.

- 선생님이 시험 시간 내내 학생들 자세에 대해 일일이 지적하는 잔소리 때문에 너무 시끄러웠다. (OO 두 손을 다 책상 위로 올려라, OO 왜 손이 안 움직이냐, OO 지금 고개 들고 뭘 보는 거냐 등등)

- 시험 보다 말고 갑자기 스피커를 켜고 얘기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 자세에 제약이 있어서 온전히 내 스타일대로 편하게 시험 문제에 집중할 수 없었다.

  …


익숙지 않은 시험 방식과 몇몇 학생들의 돌발행동에 볼멘소리들이 나오고 있는 것인데, 전반적으로 오름세였던 시험 결과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의 제기 없이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나의 걱정이 그저 기우였던 것은 아니다. 둘째의 수학선생님은 수학시험이 끝난 다음날, 학부모들의 단톡방에 이런 글을 올렸다.


“请部分家长理性面对,咱们不能盲目乐观,有几个同学的成绩明显水太多,真实性不够”

(일부 학생들의 부모님들은 이성적으로 판단하셔야 합니다. 이번 성적이 잘 나왔다고 무작정 기뻐하기엔 어떤 학생들은 부정행위가 뚜렷이 보입니다. 진실성이 부족해요)


나로서는 예상했던 바여서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학교에서 봐도 컨닝하는 아이가 있는데 심지어 집에서 혼자 치르는 온라인 시험에 부정행위가 없을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으니까. 의심스런 정황이 있다 해도 학교에서조차 뚜렷한 해결방법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다행히 그동안 엄격했던 방역 조치들이 하나 둘 완화되고 있으니, 앞으로 남은 시험은 예전처럼 학교에서 정상적으로 치르고 학기를 잘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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