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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Apr 03. 2020

91. 탑골공원

돌담벽을 따라 줄지어 놓인 바둑판. 하나의 바둑판을 둘러싼 네댓 명의 사람들. 그 줄 끝 어딘가에 세워진 200원짜리 커피 자판기엔 쭈그려 앉아 거의 다 타버린 담배 끝을 부여잡은 사람 하나.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땅을 응시하는 사람 둘. 여기는 세월에 치여 현재를 죽이려 온 노인들의 오프라인 광장. 탑골공원이다. 이 광장이 부활했다. 온라인 탑골공원이란 이름이다. 물론 여기에 노인은 없다. 이 이름은 그저 옛 것, 오래된 것을 상징하기 위함일 뿐. 현실에서 이뤄지는 노인 배제가 신조어에도 감춰져 있다.


이 온라인 탑골공원에서 뛰노는 젊은 세대는 주체적이다. 유희가 가장 큰 유인 동기지만 이곳엔 옛 것에의 존중과 반성이 있다. 십 수년 전 영상들을 보며 '지금이었으면' 지탄받을 언행을 지적하는 반면 '지금에도' 유효한 조언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걸러 판단하는 것이다. 마치 고전을 읽듯 시대적 한계와 시대를 관통하는 지혜를 함께 인정한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오프라인 탑골공원에 그들이 갖고 있는 부정적 인상과 노인을 향한 선입견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 편견이 반영된 말이 꼰대다. 물론 시대적 감수성이 떨어지는 발언, 요청하지 않은 조언, 자기도취적 영웅담은 꼰대의 예다. 꼰대란 언어의 등장은 힘이 셌다. 젊은 세대가 느껴온 불편함의 원인과 주체를 명명함으로써 기성세대의 자기 검열 기제를 강화시켜 줬다. 나 역시도 연장자로부터 "이 말 하면 꼰대인가?"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됐다. 이른바 '젊은 꼰대'란 표현도 나오는 지금, 꼰대 자체가 연장자를 칭하는 말과 등치 됐고, 노인은 언제나 포함됐다는 건 자명하다.  


그러나 그 언어의 역효과도 생겼다. 거칠게 퉁치자면 옛 것에 대한 무조건적 반감이다. 그것엔 기성세대 존재 자체는 물론 그들의 말과 경험 등이 다 포함된다. "꼰대네." 하는 순간 구체적인 맥락과 함의 따위 고민할 필요 없이 '고리타분한 것'이란 먹물이 칠해진다. 이는 노인 혐오라는 크고 진부한 문제로만 이어지지 않는다. 또 다른 문제는 이 꼰대라는 표현에 덩어리로 묶이고 납작하게 짓눌려버린 건실한 비판과 유익한 충고다. 이조차 주관의 영역일 수 있지만 꼰대 발언으로 치부되고, 비하와 냉소의 대상이 되기엔 아쉬운 것들도 있다. 예컨대 성실성 같은. 


한 선배는 나와 인턴 동료였던 한 친구의 불성실함을 토로하다 자신이 꼰대인지 자문했다. 온갖 ‘개인 사정’으로 출근은 조금씩 늦으면서 ‘퇴근은 칼 같이’를 시전 하는 그에게 일을 맡기기 힘들다고 말하면서 였다. 그러나, 약속을 지키는 예의는 이전 세대에만 통용되던 얘기가 아니지 않나. 순간 속담 ‘빈대 잡다 초가집 태우기’ 떠올랐다. ‘꼰대 잡다 진실한 조언을 놓칠 판’ 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꼰대란 언어에 갇혀 버린 우리의 모습에서 주체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오프라인 탑골공원과 그 안의 노인에 대한 반감도 마찬가지. 온라인 탑골공원에서의 태도를 취해보면 어떨까. 우리에겐 일관적인 주체성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것은 오래된 것, 기성세대 등에 무조건적이고 감정적 반응이 아닌 가려내고, 취할 것은 취하는 영리함과 같을 것이다. 


# 놀러와요, 글-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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