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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Apr 12. 2020

98. 럭키박스

주섬주섬. 언니는 얘기하다 말고 일어나서 자꾸 뭘 챙겼다. 집에서 밥은 해 먹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김을 챙겼다. 집 구경 차 책장을 들여다봤더니 책을 가져가라고 했다. 빌려달라니까 그냥 가지라고 했다. 그리곤 김과 책, 노란 행주와 청소 티슈까지 넣어 '럭키박스'를 만들어줬다. 자기 성까지 붙여 이건 '조럭키박스'야,라고 했다. 


언니는 날 배웅하는 길에 "자주 보자. 고마워"라고 했다. 이 말을 끝으로 뒤도 안 돌아보곤 걸어가는데, 그 뒷모습을 아주 잠깐 멍하게 바라봤다. 왜 나한테 고맙지, 내가 더 고마워해야 하는데. 그녀가 준 럭키박스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생각했다. 행운이 내게 찾아왔다고. 이 꾸러미뿐만 아니라 사람이. 아주 따뜻한 사람이. 


언니 집에는 글귀가 하나 붙어져 있었다. 겸허한 사람이란 지금껏 자신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살아왔음을 깨달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언니는 나한테 자꾸 주려고 하나보다, 싶었다. 자신이 도움받고 살아왔음을 알아서 어린 내게 다시 주려는 것. 그 겸허함을 배우고 이 행운에 감사하자고 다짐하면서 럭키박스를 꼭 쥐었다.    


# 놀러와요, 글-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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