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심을 깎았다. 날이 섰다. 날카로운 심을 세워 일기를 쓰려니 불편했다. 괜히 자세를 고쳐 잡고 심이 부러지지 않게 한 글자씩 정성 들여 써야 할 것만 같았다. 속에서 쏟아지는 말의 속도를 손이 따라잡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글씨를 깔끔하게 쓰려다 글쓰기 자체가 방해된 셈. 일상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무언가를 할 때 완벽히 준비돼 있을 필요는 없다. 일단 시작하면 된다. 숨만 쉰다고 사는 건 아니고 책상에 앉는다고 공부가 되는 건 아니지만 숨을 틀어막고, 의자를 밀쳐둔 상태보단 용기다. 그만한 용기 냈으면 때로 좀 더 큰 것, 그러니까 내가 어찌해볼 수 없는 것에 맡겨봐도 된다. 예컨대, 시간이나 운 같은 것들. 그건 섣불리 낙관하는 게으름이 아니라 사소하지만 단단하게 낸 용기다. 당신의 연필을 잡길.
'제 연필'을 잡고서 쓴 첫 글입니다. 저는 인간이 몸으로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은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100일 간 매일 제 삶을 기록하려 합니다. 그 기록이 저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가치가 있길 바래봅니다.